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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㉘] 국민 첫사랑 수지, 인생작 바꿨다…‘안나’의 사랑스러운 배우들


입력 2022.07.11 11:30 수정 2022.07.13 05:1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유미에서 안나로, 배우 수지 ⓒ이하 출처=하라의드라마리뷰 블로그 유미에서 안나로, 배우 수지 ⓒ이하 출처=하라의드라마리뷰 블로그

배우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앞으로 나아가는가는 중요한 변수다. 한 발 또 한 발, 진일보 한 배우들은 오래도록 대중의 곁에서 숨 쉰다.


배우 수지가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극본·연출 이주영)를 통해 큰 걸음을 뗐다. 그의 인생작이 ‘건축학개론’에서 ‘안나’로 바뀌었다고 할 만큼 인상적 연기를 펼쳤다.


드라마 ‘안나’는 1986년 여섯 살 유미를 시작으로 2020년 마흔 살 안나까지의 시간을 담는다. 그 가운데 수지는 1999년 열아홉 살 이후를 연기했다. 국민 첫사랑이라는 수식어를 안긴 영화 ‘건축학개론’의 모습처럼 순수하고 맑은 이유미로 출발해 온갖 거짓말과 허울로 대학교 교수이자 서울시장 후보자의 아내가 된 안나까지 조금의 덜컥거림 없이 매끄럽게 표현했다.


안나에게 최지훈과의 결혼은 기회일까 '지옥의 문'일까 ⓒ 안나에게 최지훈과의 결혼은 기회일까 '지옥의 문'일까 ⓒ

배우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의 변화일 수도 있고, 색이나 향이 짙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깊이가 한층 농익는 것일 수도 있다. 수지는 ‘안나’를 통해 간장에 맛이 들 듯 한층 깊어진 풍미를 과시했다. 영화 ‘백두산’을 통해 생활형 유부녀 연기를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앞당긴 경험들이 의미 있었음을 ‘안나’를 통해 확인시킨다.


사실 ‘안나’를 보게 된 건 입소문 덕분이었다. ‘드라마 재미있던데’, ‘수지가 엄청 예뻐’, ‘배우들이 연기 다 잘해’…. 소문 그대로였다. 6화를 한달음에 봤고, 수지는 예쁨을 넘어 아름다웠다. 그뿐이 아니었다. ‘배우 맛집’이라 할 만큼 눈을 붙들리고 마음을 뺏기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다.


최지훈 역의 배우 김준한 ⓒ 최지훈 역의 배우 김준한 ⓒ

먼저 유명 벤처기업 IT솔리드 대표이자 서울시장을 꿈꾸는 정치인 최지훈 역의 배우 김준한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채송화 선생(전미도 분)을 묵묵히 짝사랑하던 듬직하고 올곧은 연하남 안치홍 선생은 찾아볼 수 없다. 갖은 야합과 악행과 불법으로 자수성가를 이뤄낸 ‘빌런’을 짜릿하게 연기했다.


처음엔 그저 이안나의 남편감으로 등장한데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니 시골 출신 성공남인가 싶었다. 선한 ‘안치홍’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끌어와 겹치고, 깎아 놓은 밤톨같이 생긴 배우의 외모를 더해 보고 싶은 대로 본 착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뭔지 모를 뒷골 서늘한 느낌이 김준한에게서 배어 나왔다.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는 모습, 운전기사에게 보인 잔인한 갑질에도 놀랐는데 아내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다 못해 선거가 끝나자 사냥 끝난 개처럼 ‘팽’하는 대목에선 악마성이 느껴졌다. 그 선비 같은 외형에서 저 비열함이 분출하니 더욱 돋보인다.


현주에서 안나로, 배우 정은채. 유미가 훔친 것도 가짜였다 ⓒ 현주에서 안나로, 배우 정은채. 유미가 훔친 것도 가짜였다 ⓒ

괄목상대할 변화를 보여준 이가 또 있으니 배우 정은채다. 처음엔 그저 부동산 재벌의 외동딸 현주, 졸부인 것 감추려 더욱더 문화적으로 치장하는 ‘작은 이사님’으로 보였다. 정은채는 워낙 키가 크고 하얀 피부에 신비롭게 생겨서 북유럽 신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동안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치 흑백필름인양 수수하게 나오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유채색 명품으로 휘감으니 독보적 미모가 빛난다.


아, ‘컬러풀’이 잘 어울리는 배우였구나. 허영과 허세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패션스타일, 태생적 공주 분위기를 이토록 몸에 착 붙게 연기할 배우가 몇이나 될까 감탄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인생 궁지에 몰리고, 결코 뺏길 수 없는 소중한 보배인 딸을 지켜야 하는 엄마로서 억척을 부리고, 내 인생을 훔쳐 산 안나에게 유세와 패악을 떠는 연기에서는 ‘물 만난 고기’가 보였다.


오래전, 영화 기자들이 주는 상을 받으러 왔다가 밥자리에 동석하게 됐을 때 배우로서의 가능성에 스스로 의구심을 품고 고민을 토로하던 정은채는 이제 없다.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분위기를 결코 가벼이 하지 말고 전진하라던 응원도 이제는 필요 없다. 맞는 옷을 입으니 입안에서 맴돌던 발화도 막힘이 없다. 배우 정은채의 안과 밖이 하나로 멋지다.


유미의 유일한 친구이자 선배, 지원 역의 배우 박예영 ⓒ 유미의 유일한 친구이자 선배, 지원 역의 배우 박예영 ⓒ

보국일보의 선후배도 어울림이 좋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지성현 PD(이상이 분)를 살뜰히 챙기며 씩씩하게 짝사랑하던 왕지원 작가를 연기할 때 단단해 보였던 배우 박예영은 ‘안나’에서도 단 한 치의 타협 없는 열혈 기자 한지원으로 등장한다. 주요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거짓 없이 정의롭고, 열심히 살면서 아버지 주식 빚 갚는 보통 사람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이안나를 이유미이게 하는 ‘지원 선배’이자 마지막 판도라의 상자도 그에게 맡겨졌다. 시원시원한 발성, 야무지게 생긴 모습 그대로 연기도 시원시원하고 작품이 원하는 역할을 야무지게 해낸다.


이유미의 부탁으로 최지훈이 청탁해 ‘낙하산’으로 진입한 탓에 보국일보의 외톨이인 한지원은 아이가 둘인 유부남으로 또 한 명의 외톨이 신세인 황재민 기자(강신철 분)와 종종 얘기도 나누고 조언도 받는다. 자상한 선배, 당찬 후배,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지는 조합이다. 이야기를 사건 중심으로만 굴리지 않고, 이런 일상 장면이 들어가면 드라마의 현실성이 배가 되고 시청자는 잠시 숨을 돌리며 전개 과정을 정리할 수 있다. 그 쉼표를 배우 강신철이 준다. 강신철은 독립영화의 주연을 할 때나 상업드라마의 조연을 할 때나 그 여유로움이 같다. 주연 배우의 선배 역을 해도 어른으로서의 넉넉한 품이 자연스럽다.


유학 주선 미술학원장 역의 배우 김아영. 조연진이 든든해야 드라마에 물 샐 틈이 없다 ⓒ 유학 주선 미술학원장 역의 배우 김아영. 조연진이 든든해야 드라마에 물 샐 틈이 없다 ⓒ

그 밖에도 ‘안나’에는 비중이 크지 않은 역에도 백지원, 김수진, 김아영 같은 좋은 배우들이 뒤를 받치니 드라마가 탄탄하다. 작품이 원하는 무게감과 분위기를 정확히 표현해 주니 물 샐 틈이 없다. 댐은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전개, 적절히 휘감아 들며 드라마의 흥취를 돋우는 음악, 첫 장면이자 마지막 장면의 충격적 설정, 보기 드문 여성 서사 작품, 생활과 상황 속에서 움트는 현실적 악의에 관한 명징한 표현 등 드라마 ‘안나’에는 장점이 많다.


중요한 건 대본을 쓴 이가 스스로 연출하니 주제 의식이 살아있고 드라마 전개에 리듬감을 놓치지 않는다. 원작 ‘친밀한 이방인’을 택하는 첫걸음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미리 구상하고 준비하고 만들었음이 화면에 그대로 보인다. 요즘 영화에서도 흔치 않은 극본과 연출의 합일, 응축된 농밀함이 가능한 이유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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