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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온상으로 떠오른 中 반도체산업


입력 2022.08.14 05:05 수정 2022.08.12 08:03        데스크 (desk@dailian.co.kr)

66조원 中 반도체투자대기금 비리로 얼룩져

부패로 성과 못 내자 중국 지도부 불만 커져

대기금 전·현직 고위관계자 줄줄이 조사받아

시진핑 국가주석 ‘반도체산업 굴기 꿈’ 휘청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에서 자오웨이궈(가운데)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YMTC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칭화유니그룹 홈페이지 캡처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에서 자오웨이궈(가운데)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YMTC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칭화유니그룹 홈페이지 캡처

중국 반도체산업이 ‘부패의 온상’으로 떠올랐다. 중국 ‘국가반도체산업투자자금’(國家集成電路産業投資基金·반도체대기금)을 관리하는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이 줄줄이 체포돼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압박이 거세지면서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반도체 대기금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 등에 따르면 반부패 사정기구인 공산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검사위)는 지난 9일 두양(杜洋) 전 총감과 류양(劉洋) 투자2부 총경리, 양정판(楊征帆) 투자3부 부총경리 등 반도체대기금의 자금운용을 맡고 있는 국유기업인 화신(華芯)투자관리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 3명을 엄중한 당 기율위반 및 위법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율검사위는 앞서 지난달에도 딩원우(丁文武) 반도체대기금 총재, 루쥔(路軍) 전 화신투자 총재와 가오쑹타오(高松濤) 전 화신투자 부총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딩 총재는 반도체 등 정보통신정책을 총괄하는 공업정보화부의 전자정보국장 출신으로 2014년 반도체대기금 출범 이후 현재까지 수장을 맡았다.


반도체대기금은 2014년 중국 정부가 국내 반도체산업을 육성해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만든 빅펀드다. 그해 1기 1390억 위안, 2019년 2기 2040억 위안 등 2기에 걸쳐 모두 3430억 위안(약 66조 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반도체 자립 구상에 따라 중국 재정부와 국가개발은행 등 정부기관과 중국연초(中國煙草), 중국이동(中國移動) 등 국유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댄 덕분이다. 마련된 기금은 중국 내 100여개 반도체 제조와 설계, 패키징, 테스트, 설비, 소재 등 반도체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기업으로 꼽혀 온 칭화유니그룹이 지난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견뎌지 못하고 결국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밟아 국유화됐다. 사진은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YMTC 후베이성 우한의 반도체 공장 전경.ⓒ 칭화유니그룹 홈페이지 캡처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기업으로 꼽혀 온 칭화유니그룹이 지난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견뎌지 못하고 결국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밟아 국유화됐다. 사진은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YMTC 후베이성 우한의 반도체 공장 전경.ⓒ 칭화유니그룹 홈페이지 캡처

화신투자관리는 국가개발은행 계열사인 국개금융(國開金融)이 화신투자의 지분 45%를 갖고 있으며 국개금융 부총경리인 루쥔이 화신투자의 총재를 겸임했다. 루 전 총재는 반도체대기금 설립 이듬해인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맡아 화신투자를 이끌면서 각종 투자를 결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특정 회사에 지원을 해 주는 대신 리베이트를 받는 방식으로 비리를 저질러 온 것으로 전해졌다. ‘소유와 관리를 분리한다’는 원칙 아래 자금 조성과 중요한 전략적 판단은 반도체대기금이 맡고, 투자운용 업무는 화신투자가 담당하도록 했지만 결국 허사였던 셈이다.


더군다나 샤오야칭(肖亞慶) 공업정보화부장(장관)도 기율위 조사를 받고 있다. 반도체대기금과의 연관성은 아직까지 드러난 게 없지만,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을 실패로 몰고 간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샤오 부장은 중국의 핵심 국유기업인 90여개 중앙기업을 총괄하는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주임, 반독점 당국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국장 등을 지냈으며 공산당 지도부인 중앙위원(서열 204위 이내)이기도 하다.


반도체대기금의 최대 수혜자인 칭화유니(紫光)그룹도 수사대상에 올랐다. 자오웨이궈(趙偉國) 전 칭화유니그룹 회장이 지난달 당국에 연행됐고, D램사업부를 총괄했던 댜오스징(刁石京) 전 칭화유니그룹 총재도 조사를 받고 있다. 댜오 전 총재는 딩 총재와 과거 공업정보화부에서 함께 근무하며 친분을 쌓은 동료로 2018년 5월 칭화유니그룹에 합류했다.


중국 반도체기업 HSMC는 1200억 위안 이상의 거액이 투자됐으나 방만경영으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폐업했다. 사진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HSMC의 공장 건설이 멈춰 건축 자재들이 방치된 모습.ⓒ 중국 매일경제신문 캡처 중국 반도체기업 HSMC는 1200억 위안 이상의 거액이 투자됐으나 방만경영으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폐업했다. 사진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HSMC의 공장 건설이 멈춰 건축 자재들이 방치된 모습.ⓒ 중국 매일경제신문 캡처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중국 반도체산업 굴기의 상징’이었다. 반도체대기금 1기가 출범 후 칭화유니그룹 산하 웨이퍼 사업에만 100억 위안을 투자하고 시스템온칩(SoC) 설계업체 쯔광잔루이(紫光展銳·UNISOC), 메모리반도체 기업 창장춘추(長江存儲·YMTC) 등에 1000억 위안을 투입하는 등 칭화유니그룹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반도체대기금 2기도 2020년 출범하자마자 쯔광잔루이에 20억 위안이 넘는 투자를 단행하는 등 500억 위안을 투입했다. 이 같은 대대적인 투자를 등에 업은 칭화유니그룹은 반도체기업에 닥치는 대로 투자해 사업을 확장했다. 자오 전 회장에게 ‘반도체 광인(狂人)’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이런 ‘묻지마식’ 투자는 결국 ‘빚’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7월 칭화유니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맞으며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밟아 국유화됐다. 칭화유니그룹의 파산은 연구·개발(R&D)을 통한 실력 쌓기를 외면한 채 자금력만 동원하면 반도체 자급을 쉽게 이룰 것이라는 맹신이 빚은 ‘참사’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중국 사정당국이 반도체 분야에 대한 감찰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지난해 11월 가오 전 부총재가 엄중한 기율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2014년 10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화신투자 부총재를 맡았던 그는 반도체대기금이 지문인식 회사인 후이딩커지(匯頂科技) 지분을 매입하는 전 과정에 참여했다. 당시 발생했던 내부자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오 전 회장은 개인회사에 칭화유니그룹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그동안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높인다는 목표 아래 국가전략 사업으로 반도체 굴기에 나섰다. 반도체대기금이 투자대상을 결정하면 지방정부와 각종 금융사, 민간기업들까지 자금을 보태면서 수조억원대 프로젝트가 조성됐다. 중국 정부의 각종 세제 혜택과 천문학적 자금 지원에 힘입어 기업들은 너도나도 앞 다퉈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변변한 기술도 없이 정부자금을 따내는 ‘먹튀’가 속출했지만 반도체대기금 1기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 중국 해관총서, 화징(華經)산업연구원 ⓒ 중국 해관총서, 화징(華經)산업연구원

반도체대기금 2기부터 투자대상을 좁혔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와 화훙(華虹), 장비업체인 베이팡화촹(北方華創)과 중웨이(中微) 등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성적표는 여전히 초라하다. 지난해 6월엔 대만 TSMC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인 장상의(蔣尙義)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고 4년에 걸쳐 1200억 위안 이상 투입한 우한훙신(武漢弘芯·HSMC)은 생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폐업 처리됐다. 중국 당국의 맹목적 투자지원만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파산한 대표적인 사례다. 2020년 6월까지 1년간 HSMC CEO를 맡았던 장상이는 퇴직 후 “HSMC에서의 경험은 악몽이었다”고 고백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지난 3년간 투자한 반도체 사업 최소 6개가 HSMC처럼 실패로 끝났다고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1년 12.7%에서 2020년 15.9%, 2021년 16.7%로 올라갔다. 그렇지만 대만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외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현지 생산량을 제외하면 이 비율은 6% 수준으로 떨어진다.


물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2021년 중국 내 반도체 집적회로(IC) 생산량은 3594억개로 전년보다 33.3% 증가해 증가율이 전년의 배에 달했다. ‘중국판 TSMC’로 불리는 SMIC가 지난달 7나노미터(㎚·10억분의1m) 첨단공정 개발에 성공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도체공정은 7나노부터 첨단공정으로 분류하는데, 미국의 제재로 SMIC가 극자외선(EUV)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룬 성과다. 이에 따라 SMIC는 글로벌 파운드리 강자인 TSMC·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를 기존의 5년에서 2~3년으로 단축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쨌든 이번 중국의 반도체대기금 관련 대규모 사정 바람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압박이 커지고 가운데 성적을 내지 못한 펀드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편한 심기가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반도체대기금 사정은 부패와 비효율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반도체대기금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분노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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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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