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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71>] 심문1


입력 2023.01.04 14:01 수정 2023.01.06 09:24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

제71화 심문


“해산하십시오. 여러분은 불법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해산하지 않으면 연행하겠습니다.”

방송차량에서 경찰 책임자인 듯 여겨지는 남성이 굵은 목소리로 경고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어떤 새끼야. 여기 기어 나와서 말해. 차안에 쥐새끼처럼 숨어서 방송하지 말고!”


“씨부럴 놈들, 지랄하고 있네. 불법은 너희들이 저지르고 있는 거야!”


“야이, 개새끼들아. 너네나 도로교통법 위반하지 말어!”


경찰차벽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항의농성 중인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분노와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봉식아, 넌 그만 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이철백이 마찬가지로 흠뻑 젖은 채 경찰병력을 노려보는 임봉식에게 소리쳤다.


“도망갈 테면 같이 가야지, 나 혼자 어떻게 가냐?”


“넌 공무원이잖아. 미옥 씨나 너나 연행되면 징계야. 모르지, 잘릴는지도.”


“그럼 큰일인데? 내가 이 나이에 어떻게 해서 공무원이 된 건데.”


임봉식이 그 와중에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농담 아냐. 그러니까 넌 여기서 빠져나가. 나가서 선희랑 미옥 씨 데리고 그냥 강주로 내려가. 곧 추석이잖아. 차례는 지내야지.”


“그럼 넌 차례 안 지내냐?”


임봉식이 미안한 기색을 비치며 말꼬리를 흐렸다.


“미안해 할 거 없어. 술독에 빠져있느라 서울에 올라오지 못한 놈도 있는데 뭘.”


이철백이 언급한 한종탁은 강주에 남아있었다. 한종탁은 김석규의 농성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자신도 술집 농성을 시작했다는 흰소리를 하더니 연일 술을 마셔댔고, 아내 노지연에게 제대로 된 걱정을 안겨주고 있었다.


경찰 방송차량에서 다시 경고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철백은 주저하는 임봉식의 등을 떠밀어 대열에서 이탈시켰다. 임봉식이 마지못한 듯 느린 걸음으로 차도를 벗어났고 몇몇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철백은 인도 위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임봉식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전방을 주시했다. 잠시 후 방송차량에서 마지막 경고방송이 울려 퍼지자 집회 참가자들이 투쟁가를 부르며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웠다.


경찰병력이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우르르 달려 나오더니 차도에 드러누운 사람들을 하나둘 떼어내서 닭장차에 짐짝처럼 담아 실었다. 이철백도 스크럼에서 뜯겨져 경찰 넷에게 사지가 달랑 들려나왔다. 임봉식은 인도 위의 시민들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그렇게 한 동안 서있던 임봉식은 시청광장으로 발길을 돌려 김석규가 농성하던 천막에 도착했다. 거기엔 박미옥과 방선희가 먼저 와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임봉식은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지금 잠이 옵니까?”


검사가 목청을 돋우며 김석규가 앉아있는 철제의자를 걷어찼다. 김석규는 긴급 체포된 이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면회는 물론 변호사의 접견마저 차단하는 검찰에 김석규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묵비권 행사와 단식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끼니를 굶었더니 허기는 느껴지지 않는데 자꾸만 졸음이 몰려왔다.


“정말 계속 이럴 겁니까?”


검사가 눈알을 부라렸다. 광대뼈 위에서 눈알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김석규는 졸린 눈으로 검사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검사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부들부들 떨다가 책상을 내리쳤다. 아마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화상이라면 쥐어 패고도 남겠다 싶을 정도로 검사는 성깔머리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석규는 패볼 테면 패보라는 심정으로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정이 다되어 검사가 두 손을 들었고 변호사의 입회가 허용되었다. 김석규는 배달되어 온 곰탕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다음 조사에 임했다.


“국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음주를 조장한다고 하셨는데 그럼 국가가 불온하다는 겁니까?”


인적사항 등 기본적인 조서 작성을 마친 검사가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김석규는 든든하게 배불리 먹은 곰탕 탓인지 옆에 자리를 함께한 변호사 탓인지 배짱 좋게 반문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음주를 조장하는 국가는 그럼 온당한 국가입니까?”


“질문은 검사인 내가 하는 겁니다. 피의자는 답변만 하면 되는 거예요!”


“질문 같은 질문을 해야 답변을 하지 유도신문 같은 것에 일일이 답변할 순 없어요!”


“아니 그럼 어떤 질문이 질문 같은 질문이요?”


검사가 기가 차다는 듯 광대뼈 너머로 김석규를 째려보았다.


“국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음주를 조장한 게 있냐고 질문해야지, 거기에 국가가 불온하니 어쩌니 하는 건 또 왜 끼어 넣어요?”


“국가가 음주를 조장한다는 속내엔 국가를 불신한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검사님은 남의 속까지, 남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봅니까. 그렇게 전지전능하십니까?”


“사상이 불온하니까 불온한 주장을 하는 거 아니요?”


검사의 말에 김석규는 어처구니가 없어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변호사가 씩, 웃더니 검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검사님. 김석규 씨는 뜻밖에 긴급체포당해 심리가 극도로 불안한 상태니까 좀 이해를 해주시고요. 그리고 김 소장님도 가급적 검사님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변호사가 김석규에게 은근한 시선을 보내며 당부했다. 변호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검사는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질문을 재개했다.


“국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음주를 조장한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금주운동이 일어나면서 경기가 안 좋아졌으니까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경제 때문에 금주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음주를 조장했다는 건 무리한 주장 아닙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한해 주세 세입은 대략 3조원, 주당들이 쓰는 술값은 21조원쯤 됩니다. 그리고 과도한 음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이 2조 1천억이라고 하죠. 그뿐입니까? 주류회사에서부터 도매상, 소매상, 노래방, 음식점, 약국, 병원 등 술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정말 무시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는다면 작가라 할 수 없겠죠.”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도 아닌 것을 합리적 의심이라며 대중에게 공표하고 나서는 건 유언비어 유포라 할 수 있어요.”


“검사님. 그건 법원의 판단 영역이죠.”


변호사가 말을 자르고 나서자 검사가 불쾌한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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