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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72>] 심문2


입력 2023.01.06 14:00 수정 2023.01.06 14: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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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심문2


“저도 경찰 출신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걸 유언비어라 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만 검사님 말씀대로 그게 유언비어 유포라 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합리적 의심을 그런 식으로 매도한다고 진실이 가려지는 건 아닙니다. 저는 지독한 알코올중독자였고 또한 병원에 있으면서 알코올중독자와 그 가족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대부분이 피폐된 삶을 살고 있더군요. 환자 본인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망가져 있었습니다. 가정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또한 형사생활하면서 알코올중독자가 저지른 범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음주는 개인적 선택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환자 본인이 망가지고 고통 받는 건 당연하다고 봅시다. 그럼 그 가족들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이게 연좌제도 아니고 왜 함께 고통 받아야 합니까? 금주정책은 결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과도한 음주로 국민 건강과 가정이 위협받는다면 그 많은 복지정책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가정 하나 지킬 수 없는 복지정책이 대체 무슨 소용 있나요. 단란한 가정이 사실 최고의 복지 아닙니까?”


김석규가 열변을 토했다. 검사는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김석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에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과 시민사회의 염원에 정부는 어떻게 했습니까? 세월호 사고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부분만 거듭 강조했죠. 그리고 메르스 사태 때는 또 어땠나요. 국민 건강보다 국가 경제에 잔뜩 신경 쓰지 않았습니까.”


“김 소장님, 잠깐만요. 진술이 많으면 불리해질 수 있으니까 말씀을 좀 아끼시죠.”


변호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김석규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나치의 괴벨스는, 자신에게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큰 소리쳤었다. 물론 김석규 역시 말이 많으면 검사가 입맛에 맞는 문장과 단어를 마음껏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김석규는 죄를 탕감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정당한 주장을 펼치다 불법으로 체포당해 온 것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것도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되었을 때 생때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요구는 다만 왜 죽어야 했는지, 진상규명이 되어서 다시는 이 땅의 아이들이 두 번 다시 세월호와 같은 어이없는 참사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데도 정부는 민생경제 타령만 했었죠. 문득 그게 생각났어요. 긴급체포 당하고 여기 철제의자에 묵비권을 행사하며 앉아 있는데 문득 세월호가 떠올랐어요. 국민의 고통 앞에 한낱 경제가 뭐라고, 그 어떤 고통과 아픔도 경제라는 놈 앞에서는 후순위가 되는 현실에 구역질이 납니다. 사람이 죽어가도, 고통을 당해도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시하는 천민자본주의, 인명경시풍조가 너무 안타까워요. 국민들이 과음으로 인하여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그 환자로 인하여 가정이 풍비박산나지만 국가라는 게 정작 국민의 고통은 외면하고 다만 경제적 타산만 헤아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합리적 의심에서 금주운동은 시작된 거죠.”


“물론 김 소장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금주운동은 본의 아니게 국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어요. 국민이 국가를 못 믿게 만든 거죠. 이거 아주 위험한 발상이자 선동 아닙니까?”


검사가 비열한 표정으로 능글맞게 말했다. 김석규는 주먹으로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을 가까스로 참으며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하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추석을 눈앞에 둔 서울의 새벽 공기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임봉식과 박미옥, 그리고 방선희는 야당과 시민단체 사람들과 어울려 종로경찰서 정문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근처 식당으로 함께 가 해장국을 먹었다. 임봉식과 방선희는 금주투쟁으로 잡혀간 사람들에겐 면목 없는 일이었지만 해장국에 반주도 한잔 곁들였다. 지난 밤 시청광장 야당 천막당사에선 연행되어 간 사람들의 소재를 파악하느라 분주했고, 이철백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추석이랍시고 강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해장국에 소주 한잔씩을 걸친 사람들은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종로경찰서 정문 앞으로 돌아와 연행자들을 석방하라며 구호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동이 트고 어둠이 걷히자 그들을 막아선 의경들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다들 피곤에 절은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들은 앳된 얼굴의 의경들에겐 미안했지만 그들 뒤에 숨어 무전기를 든 채 뺀질뺀질 왔다 갔다 하는 서장과 간부들이 얄미워 스크럼을 짜서 의경들을 밀치곤 했다.


“48시간은 꼬박 채우고 석방할 모양입니다. 바쁜 분들은 먼저 가 보세요. 여긴 우리가 지킬 테니까요.”


경찰서에 들어가 연행자들을 면회하고 온 야당의 금주투쟁본부장 금주성 의원이 말했다. 방선희의 얼굴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박미옥의 면전이라서 그런지 방선희는 얼른 무덤덤하게 표정을 바꾸고 허공에다 시선을 던졌다.


“두 분은 사무실 일도 있고 추석 차례도 지내야 하니까 먼저 강주로 내려가세요. 어차피 저야 자칭 프리랜서니까 여기 남아있을게요.”


“그래도 될까요? 이거 선희 씨한테 미안해서요.”


박미옥은 추석 차례가 문제가 아니라 사무실 일이 걱정이었다. 벌써 과장에게서 몇 번이나 출근을 종용하는 전화가 왔었다. 하지만 집회현장에서 쉽게 몸을 빼지 못한 박미옥은 연가를 신청했고 과장은 안 된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과장에게 전화를 받기로는 임봉식도 마찬가지였다. 근무지 무단이탈이라며 징계위원회에 올리겠다는 협박이 있었지만 임봉식은 박미옥과 행동을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박미옥만이 아닌 김석규에 대한 의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 미안하지만 우린 먼저 내려갈게요. 철백 씨에게 안부 좀 전해 주시고요.”


“걱정 마세요. 제가 석규 씨까지 챙겨볼 테니까 마음 편하게 내려가세요.”


“어휴, 친구들 둘이나 잡혀 있는데 먼저 내려가려니, 원.”


“봉식 씨. 미안해하지 말고 다음에 술이나 한잔 사세요.”


방선희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했다. 임봉식은 금주투쟁 현장에서 술은 무슨 술이냐며 눙치더니 박미옥과 함께 미처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금주성 의원의 예상과 달리 당국은 그날 밤 자정이 지나자 연행자들을 곧바로 석방했다. 연행되었던 사람들은 경찰서 정문 앞에서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간단한 석방행사를 가졌다. 먼저 재야 원로인사가 정부여당에 대한 강도 높은 규탄발언으로 포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환호와 구호를 외치자 정문 안쪽에서 의경들이 일사분란하게 대오를 정비했다. 이어 마이크를 건네받은 금주성 의원이 격려사로 시작해서 규탄사로 마무리하며 인사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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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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