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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76>] 위대한 국가


입력 2023.01.20 14:01 수정 2023.01.20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76화 위대한 국가


강동욱이 속한 조직은 일사분란하고 신속하고 위대했다. 목표를 정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조폭처럼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 처음엔 김석규에게 유언비어 유포 혐의를 적용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는데 급기야 국보법 위반과 내란선동은 물론 간첩죄까지 거론하는 단계가 된 것이었다. 조직을 등에 업은 강동욱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이 철철 넘쳤다. 그건 모두 위대한 조직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여론을 선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주투쟁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진화(鎭火)한 것은 김석규라는 투쟁의 핵을 제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작업에 강동욱이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었고 따라서 앞으로의 출셋길이 탄탄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강동욱이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리고 기분 좋게 담배연기를 내뿜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부장검사 배석인의 전화였다. 강동욱은 재빨리 두 발을 내리고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


“김석규는 기가 좀 죽었나?”


강동욱이 부장검사실로 들어서자 칼잡이처럼 날렵하게 생긴 배석인이 물었다. 강동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직도 혐의 부인하면서 뻗대고 그러냐고.”


“그렇습니다. 내란선동과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국보법 위반에 대해서도 완강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래?”


배석인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심각한 얼굴이 되어 반문했다. 강동욱은 배석인의 표정에서 그 뭔가를 읽어내려 애쓰다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혐의 입증엔 자신 있습니다.”


“국보법까지야 그렇다 쳐도 간첩혐의는 좀 무리 아닌가?”


“아닙니다. 입증에 자신 있습니다. 탈북자들 몇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런데 아직까지 기가 죽지 않고 완강하게 부인하는 건 좀 문제 있는 거 아냐?”


부장검사의 말을 듣는 순간 강동욱은 아차 싶었다. 피의자의 혐의 입증이야 당연히 검사의 일이니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고 문제는 기소하기 전에 피의자의 기를 꺾어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재판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예전에야 고문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통해서 피의자의 기를 꺾어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피의자의 기를 꺾는 것은 검사의 능력 가운데 하나였다. 그 방법 중 대체로 잘 먹히는 것이 회유였다. 혐의 일부만 인정하면 나머지는 불문에 붙인다는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이 그것이었다. 그래도 잘 먹혀들지 않으면 협박이 사용되었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배우자 등 가족과 측근을 내사하겠다고 을러대는 것이었다.


“김석규의 기를 좀 죽여 놓겠습니다.”


“음, 그래.”


배석인이 용케 말귀를 알아듣는 강동욱이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강동욱은 허리를 90도로 깍듯이 굽혀 인사하고는 부장검사실을 빠져나왔다.


구치소에서 불려나온 김석규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긴급체포 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김석규는 갑자기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그 동안 강동욱의 회유와 협박에도 김석규는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해 왔다. 김석규가 철저하게 고립되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강동욱은 일부러 신문과 방송을 보여주었다. 금주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있던 시민사회단체가 하나둘 발을 빼고 집회는 실패했으며 야당에서는 금주투쟁 철회를 선언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비호해줄 세력도 없는데 그만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빨리 사건을 종결짓자는 회유를 해왔었다.


김석규는 금주성 의원과 금주투쟁본부의 배신으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혐의를 인정하며 스스로 간첩이 될 수는 없었다. 국가를 불신하게 만들기 위해 금주투쟁을 전개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인데 그것을 근거로 이적행위를 했다는 것엔 더 이상 대꾸할 여지가 없었다. 또한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서 김석규의 금주투쟁이 언급되고 있다며 그게 간첩죄의 근거라고 우기는 데 대해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만 날뿐이었다.


그러자 강동욱은 간첩죄와 내란선동죄는 혐의에서 제외할 테니까 금주투쟁의 목적만 제대로 진술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국민이 국가를 불신하게 만드는 게 그 목적이라고 시인하라는 것이었다. 김석규는 어림없는 소리라며 일축했고 강동욱은 이미 혐의 입증은 자신 있고 특히 정부여당의 의지와 언론의 뒷배가 든든해서 법원 역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혐의를 거래하자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걸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이후로 처음 강동욱을 대하는 것이었다. 김석규는 구치소에 있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부여당과 언론에서는 여론전을 벌이며 자신을 국보법 위반과 내란선동혐의의 간첩으로 몰아가고 있었고 야당과 시민사회는 자신을 내팽개쳐 버렸다. 아무도 자신을 변호해 줄 세력이 없는 공허함 속에서도 김석규는 정의와 상식을 믿었다. 금주운동의 목적이 그야말로 금주운동일 뿐이었지 반정부운동은 아니었고, 더구나 자신은 북한을 이롭게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면회를 온 이철백의 말에서 김석규는 한 동안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여론은 김석규가 국보법 위반과 간첩죄로 기소되어도 하등 문제 제기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라는 전언이었다. 그 말은 이제 철저하게 김석규가 고립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변호사 역시 김석규의 무죄를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석규에게 뒤집어씌운 혐의야 마땅히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정부여당의 의지가 법원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김석규는 법의 상식과 정의, 정확한 판단을 믿었다. 물론 조금 불안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보셨겠지만 어제 신문에 난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금주투쟁을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선동 혐의로 볼 수 있겠냐는 조사에서 그렇다는 의견이 70%를 넘었습니다. 아니다가 25%, 모르겠다가 5%죠. 국민 대다수가 그렇다는데 김석규 씨만 아니라고 한다면 아닌 게 됩니까?”


강동욱이 대한민국 1등 신문이라 자처하는 K일보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김석규는 신문을 일별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여론도 김석규 씨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판인데 정말 간첩죄로 인생 망칠 겁니까? 그만 국보법 혐의 하나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없는 걸로 합시다.”


“좋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죠. 대한민국 검사라면 모름지기 추상같은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마땅한데 왜 자꾸 간첩죄는 없애주려 합니까? 그게 혹시 간첩혐의는 검사님이 생각해도 터무니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강동욱이 한동안 김석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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