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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세입자 모두 공포에 떨게 만든 '전세사기' [기자수첩-부동산]


입력 2023.02.07 07:02 수정 2023.02.07 07:02        배수람 기자 (bae@dailian.co.kr)

'빌라왕' 촉발, 전세사기 기승…임대인·임차인 '몸살'

고금리 맞물려…월세는 부담, 전세는 공포

정부,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자 지원 방안 발표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이후 기자는 올해 4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이후 기자는 올해 4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이후 기자는 올해 4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이제까지 집을 옮기고, 살던 동네를 떠날 때면 아쉬움보다 늘 설렘이 컸다. 새로운 환경에서 뭐든 다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앞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자는 본격적으로 이사할 집을 알아봤다. 당연히 전세였다. 금리는 올랐고 청년전세대출을 이용해 비교적 저렴하게 전세살이 중인 기자에게 이를 포기하고 월세로 돌리긴 부담이 커서다.


때마침 '빌라왕'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설명회에서 만난 피해 임차인들은 대다수 2030 또래였다.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어느 날 기자가 사는 오피스텔 관리 업체가 교체되고, 엘리베이터에 붙은 안내문 말미의 임대법인 대표자 명의가 낯선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어도 별생각 없었다. 그렇게 의심 없이 지나친 모든 것들이 뒤늦게 걱정으로 돌아왔다.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자, 기자가 사는 오피스텔 입주민들의 문의도 빗발쳤다. 다행이라면 입주민들에게 말도 없이 바뀐 건설임대법인 새 대표는 올 초 체납액이 없다며 본인의 납세 증명서를 공지로 띄웠다.


옮길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신축 첫 입주'. 예쁘게 꾸며진 오피스텔 사진을 보고 중개업소에 문의했을 때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 "이사비 지원해 드려요", "저희는 중개수수료 면제예요" 등이다. 적게는 몇만 원부터 많게는 몇십만 원을 아낄 수 있단 생각에 기자 역시 혹했다.


그나마 예산 안에 들어오는 전셋집을 보러 가선 허탕 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필 '그 집'이 나갔으니 조금 더 비싼 보증금의 '다른 집'을 보여주겠단 경우가 허다했다. 한 달가량 중개업소 곳곳을 돌며 수많은 집을 본 끝에 이사갈 집을 구했다.


계약을 중개해준 공인중개사는 "요즘 세입자들은 조금이라도 의심할 만한 부분이 있으면 다른 집을 보여 달라거나 그냥 가버린다"며 "세입자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집주인들도 이제는 알아서 보증금을 보증보험 가입요건에 맞춰서 물건을 내달라고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로 나라가 떠들썩한데도 컨설팅 업체들이 리베이트, 속칭 '알(R)'을 건당 얼마씩 주겠다며 하루에 몇 통씩 전화가 온다"며 "애먼 임차인, 임대인, 중개인 다 골치 아프다"고 토로했다.


무주택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던 전세가 한순간 기피 대상이 돼 버리다니. 정부는 대대적인 전세사기 근절 방안을 발표했다. 지지부진하던 법 개정에도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정부는 보증제도를 악용한 '무자본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고 '안심전세앱'을 통해 임대차계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해 임대인-임차인 간 정보비대칭성을 줄이겠단 방침이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사나 감정평가사 등은 곧장 시장에서 퇴출하고 피해자에 대한 금융 및 주거, 법률 서비스 지원도 이뤄진다.


미꾸라지 한 마리만 있어도 온 웅덩이가 다 흐려진다는데, 수십 마리가 임대차시장에서 활개 치는 동안 눈 뜨고 뻔히 당하고만 있었다.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내 집 마련에 앞서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주거 형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더는 제도 빈틈을 파고들어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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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람 기자 (ba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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