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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튀르키예의 추억


입력 2023.02.09 14:01 수정 2023.02.09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애프터썬’

흔히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말한다. 많은 시간이 흘러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사진을 통하면 그날의 추억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도 같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거나 왜곡 또는 변질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혹은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애프터썬’은 여행지에서 찍은 캠코더 속 영상을 통해 부녀간의 추억을 떠올리고 기억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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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캠코더를 작동시키는 소리와 함께 빛바랜 영상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캠코더 속 영상에는 20년 전, 아빠 캘럼(폴 메스칼 분)과 딸 소피(프랭키 코오리 분)가 단둘이 튀르키예 여행지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에딘버러를 떠나 런던에 정착하려고 애쓰고 있는 캘럼은 스코틀랜드에서 엄마와 살고 있는 소피에게 기억에 남을 휴가를 남겨주기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애프터썬’은 기억에 관한 영화다. 그해 여름, 철없던 11세 소피에게 튀르키예의 기억은 어땠을까. 마냥 즐겁고 행복한 한때였을 것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함께 휴가를 떠난 부녀의 모습을 보이지만 영화 말미에 이르러 휴가에 그을린 선번처럼 한동안 남을 깊은 슬픔을 안긴다.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꺼내어 본 캠코더 속에는 그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속내와 감정의 파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휴가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녀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정확히 관객은 알 수 없지만 장성한 딸이 20년 전 영상을 보고 과거를 추억할 때 관객은 가족에 얽힌 자신만의 기억과 맥락으로 많은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기억이라는 매개체로 관객과 작품을 융화시키는 신인 감독 샬롯 웰스의 놀라운 역량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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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공감대로 관객의 마음을 자극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아빠는 마냥 크고 든든한 울타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 역시 나약한 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 캘럼은 언제나 네 편이 되어주겠다고 말하던 친구 같은 아빠였다. 하지만 소피는 시간이 흘러 아빠의 나이가 되고서야 비로써 갓 30세를 넘긴 아빠의 방황과 슬픔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아빠와 딸의 단란한 한때를 기록한 추억여행을 넘어 20년 만에 독립된 인격체로 아빠를 마주하는 딸의 모습을 그린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느끼는 부모에 대한 공감대로 마음을 울린다.


음악의 역할도 크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굳이 1990년대를 강조하지 않지만 튀르키예의 반짝이는 햇살과 부서지는 물결은 배경음악과 조화를 이룬다.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Macarena)’부터 퀸의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 첨바왐바의 ‘터브섬핑(Tubthumping)’까지 시대를 가늠하는 음악이 등장한다. 감독의 치밀한 계획과 의도를 토대로 선곡한 음악의 활용은 낯선 공간에서의 부녀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은 물론 이야기 속에 유기적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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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어렸을 때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리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기억들은 점차 희미하게 빛바래져 간다. 2022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프랑스 터치상을 수상한 ‘애프터썬’은 최근 강력한 지진으로 고통받는 튀르키예의 아름다운 바다와 풍광 속에서 우리를 어렸을 때 추억의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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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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