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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123] "불공정 노예계약·고질적인 재판 지체, 검정고무신 죽였다"


입력 2023.03.16 05:18 수정 2023.07.11 09:18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법조계 "갑을관계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절박한 마음의 작가들, 협상력에 제한"

"1심만 3년 4개월간 진행, 끝나지 않는 재판 보며 좌절감 느꼈을 것"…소송대리인 있으면 소송은 계속

"'사업권 혹은 2차 저작물 관련 모든 권한 출판사에 위임한다' 대표적 독소조항, 각별히 주의"

"영세한 저작권자 보호하자는 공론 모이면…입법적으로 해결 가능, 국회 책임의식 가져야"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연합뉴스 자료사진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연합뉴스 자료사진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향년 51세) 작가가 숨지기 직전 법원에 "저에게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의 전부이자 생명"이라며 "창작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절박한 마음의 이 작가가 만화업계에도 관행처럼 퍼져있는 불공정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저작권법을 반드시 개정하겠다는 국회의 입법적 노력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적극적인 불공정 약관 단속이 배가돼야한다고 촉구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이 작가는 2019년 6월 출판사 대표 장모(53) 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장 씨가 이 작가를 비롯한 검정고무신 원작자들과 계약을 통해 저작권과 사업권을 가져갔는데, 이 작가가 장씨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사용했다는 취지다. 만화계에서는 원작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 계약'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출판사에 저작권을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율샘 김도윤 변호사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특히 과거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며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먼저 투자를 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반면 작가들은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에 계약을 체결하고, 나중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갑과 을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작가들의 협상력에는 제한이 있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영화 업계가 계약서도 안 쓰고 하루에 20시간씩 일을 시킨 적이 있었다. 지금은 다들 표준계약서를 쓰는데,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출판업계 역시 표준계약서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강제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작가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내용이 담긴 표준계약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심만 3년 4개월째 진행되는 등 '재판 지체 문제가 이 작가의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홈즈 법률사무소 하서정 변호사는 "훈시 규정이기에 민사 1심 재판을 꼭 5개월 안에 선고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1심이 3년 4개월 걸렸다는 건 굉장히 오래 진행된 것이다"며 "아마 망인이 끝나지 않는 재판을 보며 좌절감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 스틸컷.ⓒ대교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 스틸컷.ⓒ대교

법조계에서는 영세 저작권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공론이 모이면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 변호사는 "신인 작가인 경우에는 출판사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에 주의를 하더라도 어려운 면이 있다. 특히 사업권 혹은 2차 저작물 등과 관련해 모든 권한을 출판사에 위임한다는 계약을 많이 체결한다"며 "그렇게 됐을 때는 이익에 대한 분배를 못 받기 때문에 이런 계약을 맺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공정위 역시 불공정한 약관을 단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주원 최상혁 변호사는 "영세한 저작권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공론이 모인다면 입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영역으로 두게 되면 이같은 일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 변호사는 그러면서 "불공정 계약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방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가 나서서 저작권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작가가 망인이 됐지만, 소송 대리인이 있으면 소송은 중단되지 않는다"며 "소송 대리인이 없는 경우에만 소송 절차가 중단되고, 상속인이 이어받아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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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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