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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자업자득 [기자수첩-금융증권]


입력 2023.03.21 07:00 수정 2023.03.21 07:00        고정삼 기자 (jsk@dailian.co.kr)

서울 시내에 은행 자동화기기들이 늘어서 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에 은행 자동화기기들이 늘어서 있다. ⓒ뉴시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지난해 이사를 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새로운 입주자가 나타나야 전세보증금을 반환받는데, 높아진 금리로 전세시장이 위축돼 좀처럼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배 째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뻔한 이번 사안은 다행히도 집주인이 급전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돌려주면서 일단락됐다. 그런데 집주인이 돈을 어디에서 마련했는지, 보증금 중 상당 부분이 현금이었다고 한다. 받은 현금을 은행 계좌에 다시 입금해야 하는데, 영업점을 찾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인구수가 적은 지방도, 도서·산간 지역도 아닌 서울 도심에서 말이다.


최근 은행을 바라보는 금융 소비자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 단순히 고금리·고물가로 내 호주머니는 가벼워져만 가는데, 이들은 '이자 장사'로 '돈 잔치'를 벌이는 게 배 아파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아마도 은행들이 그간 보여준 구태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은행들은 돈벌이가 안 되는 영업점을 꾸준히 폐쇄해왔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출장소를 포함한 영업점은 지난해 말 기준 2883개로 5년 전과 비교하면 680개나 사라졌다.


물론 어느 산업을 막론하고 온라인·비대면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다만 오프라인 채널을 가지고 있는 민간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며 고군분투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돈이 안 되는 지역의 영업점을 폐쇄해 비용을 절감하는 쉬운 방법을 택한다. 영업점들이 강남권에서만 눈에 잘 띄는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에는 상식 밖의 주장까지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단축된 영업시간을 정상화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19 시기에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 운영했다.


이제는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됐으니 영업시간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하는데,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며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친다. 영업시간을 정상화할 경우 업무가 가중해진다면 회사 내부적으로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해 해결할 문제다. 영업시간을 늘려도 부족한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이 이들의 투정을 바라보며 환멸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경영은 얼마나 잘했을까. 고액의 성과급·퇴직금 등을 지급하며 '돈 잔치'를 벌일 만큼 은행들은 충분한 이익을 창출했을까.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은 평균 10.5%에 불과하다. ROE는 자기자본 대비 몇 퍼센트의 이익을 창출하는지 보여준다.


그간 자기자본이 늘며 몸집은 커졌는데, 수익 창출 능력은 5년 전 ROE(9.1%)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은행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영업에 익숙해진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경영진들과 직원들은 해매다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챙겨간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한 이후 은행들은 민간기업에 대해 당국의 개입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호소한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란 지적도 비등하게 나온다. 금융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민간기업으로써 걸맞는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탓이다. 민간기업 대접을 받고 싶다면, 치열한 혁신과 변화 의지를 통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일부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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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삼 기자 (j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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