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47 보스톤’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미국 보스턴시에서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 애국자의 날에 열리는 세계 4대 마라톤 대회 중 하나다. 이 대회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2001년 이봉주 선수가 1위로 우승했으며 앞서 1950년 54회는 1위부터 3위까지 한국인이 우승해 화제를 모았다. 또한 1947년 51회 대회에서 서윤복 선수가 2시간 25분 39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다. 추석 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톤’은 미군정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참가한 서윤복 선수의 의미 있는 승리를 다룬 작품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하정우 분)은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서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린다. 해방이 된 후 1947년 서울, 제2의 손기정으로 촉망받는 서윤복(임시완 분)이 그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마라톤을 접었던 손기정은 올림픽에서 빼앗긴 조국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기 위해 서윤복과 함께 미국 보스턴으로 출발해 잊을 수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로 진한 감동을 전한다. 영화는 1947년 서윤복 선수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도 있듯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모두 실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서윤복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보스턴으로 출발하는 것에서부터 베를린 동메달리스트였던 남승룡 선수가 코스마다 설명하며 페이스메이커로 선수로 참여해 서 선수를 돕고 노장의 나이로 12위를 기록한 것, 관중석에 있던 개의 목줄이 풀려 서윤복 선수가 휘청거리다 결국 넘어져 상처가 나는 등 에피소드마다 허구적인 게 아니라 실재한 사실이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사실이 극의 재미와 감동을 전한다.
국가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일본에 귀속돼 올림픽 영웅으로서의 영광을 오롯이 느끼지 못했다. 국권을 빼앗긴 1912년에 태어난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는 태극기를 본 적이 없었고 애국가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우리는 평상시에는 대부분은 국가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극중 백남현(김상호 분)의 말처럼 ‘솔직히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가 ‘처음으로 국제대회 나갔을 때 나라 없는 설움을 절실히 느꼈다’라고 말한 것처럼 국가의 존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일제강점기 손기정은 선수 시절 내내 Korean임을 강조했고, 미국은 일본과 달리 미국 독립혁명의 중요한 무대가 된 보스턴에서 한국의 독립을 중요시해 선수들이 태극기를 달고 달릴 수 있도록 도왔다.
의도된 연출이 안타깝다. 최근 한국 관객은 울음을 유발하는 영화를 선호하지 않아 신파영화에 대한 평가가 유난히 냉혹하다. 거기에 애국심을 담았다면 국뽕이라 비난까지 한다. 신파는 새로운 흐름이란 뜻으로 서양식 연극을 말하는 일본식 용어지만 영화에서는 슬픔과 같은 감정을 강요하는 연출방식을 의미한다. 영화는 다양한 기법의 연출로 관객들 마음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신파의 순기능을 지나치게 폄하하고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 ‘1947 보스톤’은 나라 잃은 설움을 경험한 주인공들이 역경을 딛고 태극기를 달고 달리는 감동의 순간을 의도적으로 자제토록 만들었다. 서윤복 선수의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영화적으로 좀 더 큰 감동을 보여줄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미국 전역에 휘날리는 성조기와 더불어 미국민의 국가 의식이 강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당연히 국가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해야 하지만 최근 국가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경향으로 이를 간과하고 있다. 영화 ‘1947 보스톤’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승리한 손기정과 서윤복을 통해 우리에게 국가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