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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관찰 유발자들’입니다 [홍종선의 신스틸러⑭]


입력 2024.05.27 22:12 수정 2024.05.28 05:23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이하 출처=JTBC 공식 홈페이지

배우에게 있어 사랑받는 요건은 잘생긴 외모, 뛰어난 연기력, 깊은 감성 등 여러 가지다. 뭐니 뭐니 해도 왠지 자꾸 눈길이 가고 얼른 보고 싶은 ‘호감’과 ‘매력’을 당할 건 없다.


드라마든 영화든 그 흥행에 있어 주연배우의 대중을 끄는 호감과 매력, ‘흡인력’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을 맡은 2명 혹은 4명의 이름을 확인한 후 ‘마음을 끄는’ 배우가 없거나 유독 비호감 배우가 있는 경우, 시청이나 관람을 제외하기 일쑤다. 미치게 사랑하는 배우가 조연을 맡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 외에도 좋아하는 배우는 많고 볼 것도 너무 많고, 시간은 한정돼 있다.


믿고 보는 배우, 도다해 역의 천우희 ⓒ

같은 맥락에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주연배우 천우희와 장기용은 믿음직하다.


천우희의 연기력은 길게 말하기엔 입 아플 만큼 누차 확인돼왔고, 볼수록 예쁘고 매력 있는 외모로 시청자를 불러들인다. ‘천우희 주연? 시청 필수!’의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군대에 다녀오고 나니 배우 장기용의 얼굴에서 강동원의 리즈 시절이 보인다^^ ⓒ

‘안구 정화’의 미모를 지닌 장기용은 심지어 이번 드라마를 통해 성장과 변신을 보여준다. 더 이상 선배 임수정이나 송혜교에 밀리지 않는 ‘깡’과 신인배우치고 안정된 연기력…이 아니라 파트너 천우희와 함께 드라마를 이끌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성장. 깎아 놓은 미모를 머리칼 없이 드러내고 감각 있는 의상으로 체격 좋은 비주얼을 자랑하지 않아도, 아니 더벅머리가 눈을 반쯤 가리고 자다 나온 듯한 일상복을 입어도 여전히 주목도가 있음을 보여주는 변신이다.


앞으로 고두심의 나이는 잊어 버리자, 그저 배우 고두심이다! ⓒ

여기에 나이를 먹어도 고운 자태와 텐션(긴장감) 있는 에너지를 보유한 배우 고두심이 드라마에 ‘격’을 부여한다. ‘고두심이 선택한 드라마’라는 어구에는 배우에 대한 믿음에 더해 드라마에 명품의 기운을 형성시킨다.


이렇게 주연 3인방이 드라마의 기초를 탄탄히 하면, 좋은 일이 있다. 그 반대를 생각해 보면, 탄탄 주연의 미덕이 선명히 드러나는데. 주연배우들이 영 연기를 못 하면 이야기에 몰입도 안 되고, 불안불안한 마음에 다른 조연배우들이나 미장센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말했듯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경우엔 주연들이 기본 그 이상을 해주니 마음이 턱 놓이면서 드라마의 다른 배우와 요소들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영화 ‘정순’의 원톱 주연, 대세 배우 김금순 ⓒ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1번은 배우 김금순이다. 도다해(천우희 분)의 의붓엄마인지 감금 협박자인지 헷갈리는 백일홍 역을 ‘맛있게’ 소화 중이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매우 강한 캐릭터를 힘주지 않고 연기한다는 점, 조금도 예쁜 척 없이 우리가 찜질방에서 만났던 세신사나 매점 주인아줌마처럼 현실감 있게 표현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연기대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대배우 고두심과 맞붙는 장면에서도 팽팽하게 신(scene)을 훔친다.


빼어난 패션감각 유감 없이 발휘 중인 배우 오만석 ⓒ

2번 역시 배우인데, 복만흠(고두심 분)의 남편 엄순구를 연기한 오만석이다. 엄순구 역은 처음엔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그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인물이다. 내공이 없으면 드라마 초반부터 이를 들켜 자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데, 오만석 배우는 ‘가랑비에 속옷 젖듯’ 시청자에 스며든다. 정신 차려 보면, 천하의 복만흠 뒤통수를 칠 만큼 간 큰 인물인데,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크다. 역시 준비된 배우들은 기회만 부여되면 본색을 발현한다.


이 배우의 내일이 무섭도록 궁금하다, 박소이 ⓒ

신스틸러 코너인 만큼 배우들 얘기를 먼저 하자면, 세 번째 배우로 복귀주(장기용 분)의 딸 복이나 역의 박소이를 꼽고 싶다. 영화 ‘담보’ 때부터 진즉, 누구의 아역이 아니라 독립적 어린이 배우임을 과시한 박소이. 천부적이라는 표현을 경계하지만, 달리 뭐라 설명할 길 없이 나이에 걸맞지 않은 감성 연기는 5년의 세월 속에 섬세하게 연기의 세부 요소마저 챙기는 괴력으로 진화했다. 오래도록 연기력이 늘지 않는 어른 배우나 오랜 경력 속에 신선미를 놓친 선배가 본다면 질투가 날 만큼, ‘관찰하고 싶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미모에 가려졌던 연기력 제대로 발산! 배우 수현 ⓒ JTBC 제공

등장 때마다 눈 크게 뜨고 다시 보게 하는, 비주얼 충격이 가장 큰 배우는 복동희 역의 수현이다. 키를 비롯해 신체 조건에서도 꿇리지 않고 할리우드에서 당당히 활동한 그 배우 맞나 싶게 비만녀 분장 속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한두 회 지나면 모델 포스 드러내겠지 했는데. 8회까지 방영된 지금, 살이 조금씩 빠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우람하다. 고국^^ 시청자에게 제대로 눈도장 찍을 것이 기대되는 작품에서 본인의 특장점 중 하나인 외모를 감추는 선택, 그만큼 연기력에 자신감이 엿보이고 실제로 실망은 없다. 수려한 미모에 현혹돼 배우 수현의 연기력을 미처 몰랐던 과거를 반성하게 만드는 호연이다.


엄순구의 아들 복귀주 ⓒ이하 출처=JTBC 공식 홈페이지

백일홍을 엄마라 부르는 노형태 역의 배우 최광록과 그레이스 역의 류아벨을 비롯해 이루 호명하지 못한 배우들까지 ‘이야, 이 드라마엔 물 샐 틈이 없네’ 생각하며 드라마를 즐기다 문득 생각한다. 어, 왜 귀주와 동희는 아빠 성을 따라 ‘엄귀주’와 ‘엄동희’가 아니고 엄마 성을 따라 ‘복귀주’와 ‘복동희’이지? 이나는 왜 다시 아빠 성을 따라 ‘복이나’인가?


이유는 선명하다. 복동희가 어느 성씨의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자녀의 성씨는 ‘복’일 것이다. 즉,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성씨는 초능력을 따라 흐른다. 힘이 있는 자가 성씨의 주인이다.


이를 백일홍네에 대입하면, 백일홍이 아주 세 보이지만 그를 엄마라 부르는 셋 중에 아무도 백 씨가 없는 걸 보면, 백일홍은 힘을 독점한 최고 권력자가 아니다. 의외로 평등한 가족이다.


히어로 아니라던 어벤져스 배우들 ⓒ

초능력 혈통으로 똘똘 뭉친 복만흠 일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이유 있는 합가를 선택한 백일홍 가족. 두 가족의 중간에 서서 ‘열쇠’를 쥔 도다해. 이제 12부 가운데 3분의 2까지 온 가운데, 남은 4회차에서는 도다해와 복씨 일가의 운명적 인연이 공개되며 ‘왜’ 도다해가 그들의 잃어버린 초능력을 돌이키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될 것이다. 물론 복귀주와 도다해, 천우희와 장기용의 로맨스로 시청자의 ‘연애 세포’를 자극할 것은 자명하다.


웃으면서 이런 추측과 전망으로 오는 1일 방송될 9회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관찰을 유발하는 배우들’의 차진 연기력 그리고 인간의 초능력을 허무맹랑한 판타지 대신 누구나 꿈꿔본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의 일상에 투영한 공감도 높은 설정 덕분이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연출 조현탁, 극본 주화미, 제작 글앤그림미디어·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 편성 JTBC)이라더니, 어떤 히어로보다 큰 재미를 주는 안방의 ‘수퍼 히어로’들을 만나보자. 지금부터 따라잡아도 늦지 않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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