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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높아지는 뮤지컬 진입장벽…‘비공개’ ‘서류전형’에 우는 신인들


입력 2021.06.06 11:01 수정 2021.06.06 19:39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사라지는 공개 오디션, 신인 배우들 무대 오를 기회조차 없어

신인발굴은 장기적 성장 위한 과제, 뮤지컬계도 다음 세대 생각해야

ⓒ신시컴퍼니 제공 ⓒ신시컴퍼니 제공

“나만 이렇게 방송을 하면 되나? 내 일이 잘 되면 난 내 역할을 하는 건가?”


유재석이 데뷔 30주년을 맞아 특집 편성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한 말이다. 유재석은 무명 생활을 딛고 국민MC로 거듭난 이후에도 꾸준히 후배들의 설 자리를 고민한다. 자신이 후배들의 자리를 뺏는 건 아닌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늘 후배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유재석의 고민은 코미디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티켓파워가 절대적인 뮤지컬 무대에선 신인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연계에선 스타의 이름값이 곧 티켓 판매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다. 작품성과 별개로 ‘내 배우’를 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이 공연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신인을 기용하는 건 모험과도 같다는 말이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티켓 파워가 있는 유명 배우를 내세워야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팬덤이 형성되지 않은 신인을 기용하는 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결정이다. 때문에 주조연을 신인으로 뽑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로 앙상블의 경우는 신인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공개 오디션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시간과 제작비, 인력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비공개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꾸준히 “뮤지컬 스타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 통로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여러 신인 뮤지컬 배우들이 “무대에 서고 싶지만 설 기회조차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공개 오디션의 경우 이미 전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었거나, 제작사나 스태프, 배우들의 추천이 있는 경우에만 오디션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인맥이 없는 신인의 경우는 오디션의 기회조차 누릴 수 없다.


물론 여전히 공개 오디션을 실행하고, 신인 발굴에 공을 세우는 제작사도 있다. 최근 ‘검은 사제들’이나 ‘스프링 어웨이크닝’ ‘시카고’ 등이 공개 오디션으로 배역을 뽑은 사례들이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주로 제작하는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실장은 “신시는 해외 스태프와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엔 한국에서 아무리 티켓파워가 있는 유명한 배우라고 하더라도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면서 “한국에서의 인지도 등 배우의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작품에 어울리는 배우인지 직접 오디션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정서가 바탕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신인을 발굴하는 건 중요한 숙제이고, 그들을 발굴할 수 있는 공개 오디션이 많으면 좋겠지만 큰 결단이 필요하다.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 큰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처럼 팬덤이 커진 상황에서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증명된 배우를 쓰는 흐름”이라며 “향후에도 공개 오디션이 더 많아질 거라고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개 오디션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서류전형’의 문제도 있다. 본격적인 오디션이 진행되기 전 한 차례 배우들을 추리는 작업이다. 신시컴퍼니의 경우는 공개 오디션에서 과감히 ‘서류전형’ 과정을 생략했다. 최 실장은 “공개 오디션을 하면 지원자가 족히 1000명이 넘기 때문에 모든 지원자들을 다 보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신시컴퍼니의 공개 오디션에서 서류전형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는,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잡지 못하고 서류에 적힌 경력이나, 이력들로 재단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신인의 경우엔 경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기회조차 잡을 수 없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는 뮤지컬계에서 ‘톱스타’ 대열에 오른 정선아, 박지연을 비롯해 고은성, 민경아 등 수많은 스타들이 공개 오디션을 거쳐 발굴된 이들이다. 이들과 같은 스타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신인들에게 오디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뮤지컬계는 결국 ‘고인물’이라는 평가를 벗어나긴 힘들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팬덤이 두터운,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를 쓰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장기적으로 뮤지컬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신인 발굴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면서 “경력이 있는 배우들만 사용하다 보면 결국 신인들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공정한 시장을 위해서라도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이제는 뮤지컬계도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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