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사고 이후 5일간 브리핑 마쳐
사고 후 운항횟수 감축 및 정비 인력 확충 대책
사고 나야만 돌아보나… 피로 쓰여진 안전 경각심
"아마 지금 타는 비행기가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요. '역사는 피로 쓰인다'는 말이 참…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국내 한 항공사 직원 A씨가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한 대화를 하던 중 한숨을 뱉으며 꺼낸 말이다. 국내 어떤 항공사든, 아니 전세계를 막론하고 이번 참사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은 항공사는 없을 거라고. 사고 원인과 관계없이, 지금 모든 항공사들의 안전 수준은 최상일 거라고. 그가 근무하는 항공사 역시도 비상에 걸렸다고 했다.
항공산업은 '피로 쓰였다'는 말이 지독하게 잘 들어맞는 산업 중 하나다. 커다란 건물이 작은 도미노처럼 보일 정도로 높게 떠 국경을 넘고, 수십 시간을 문제 없이 날아다니기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100대 중 절반이 추락하고, 그 이후엔 30대, 10대를 거쳐 현재 1대도 추락하지 않을 정도가 되기까지 말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발생한 치명적 여객기 사고는 10건이었다고 한다. 빈도를 떠나 요즘 시대에도 승객을 태운 여객기에서 사고가 난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상상이지만, 확률을 보면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수치다. 그 해 여객기가 뜨고 내린 횟수는 4000만번, 사고 확률로 따지면 0.000025%다.
우리가 여행, 출장만을 떠올리며 덮어놓고 믿던 안전한 비행기는 참혹한 사고가 일어날 때 마다 추가된 수많은 규정과 항공사들의 자발적인 검열이 쌓여 만들어졌다.
우리의 사례가 되지 않길 바랐던 0.000025%에 해당하는, 하지만 결국 일어나버린 이번 제주항공 참사 역시 사고 이후 가장 발 빠르게 이뤄진 것이 있다면 바로 안전 대책일 것이다. 사고 여객기를 운영하던 항공사인 제주항공은 참사 당일인 작년 12월 29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1월 1일을 제외하고 5일 연속 브리핑을 열었는데, 브리핑의 핵심 문구는 결국 '운항을 적게 하고, 정비 인력을 늘리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5일간 이뤄진 제주항공의 브리핑은 사실상 정부의 사고 수습 현황을 다시 알려주는 차원의 정보 제공과 제주항공에 쏟아지는 문제를 항변하는 시간이 주를 이뤘다. 사고기가 이전 비행을 마치고 한 시간 만에 운항을 재개했고, 정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운항횟수가 과도했고, 운항승무원들의 근무 강도가 높다는 온갖 지적에 대해 '규정대로 준수했다'는 대답을 하기 위한 자리였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는 참사 이후 발표한 운항 횟수 감축, 정비 인력 확충 계획이 "사고와 관련한 대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이런 지적이 쏟아질 쯤 적시에, 상당히 적합한 대책을 내놓은 것임은 틀림없다.
사고 원인 조사는 이제 막 시작해 나오지도 않았는데, 책임 소재조차 불분명한 제주항공은 왜 자발적으로 안전 대책을 들고 나선걸까. 사고 당시 잘못이 될 만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사고의 책임은 아직 없지만, 그럼에도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듯 하다.
이쯤에서 글 서두에 등장한 A씨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 데도, 사고의 책임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항공사 스스로 미흡한 점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일. 또, A씨가 근무하는 항공사가 그랬 듯, 사고를 본 모든 항공사들도 따라서 자체적으로 안전 수준을 보강하는 일. '지금이 가장 안전한 때'라는 그의 말은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르겠다.
안전 수준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니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든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제주항공의 운항 횟수가 무려 15%나 줄어드는 일이 있었을까? 대체 편이 가장 많고, 인기가 많은 노선에서 나오는 수익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을까? 이 작은 나라에 항공사가 10개 가까이 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안전을 우선시하느라 운항편을 줄이고, 인건비를 과감히 투자해 정비 인력을 확충하는 결심을 내릴 수 있었을까?
지금 제주항공을 비롯한 여러 항공사들이, 그리고 공항들이 부랴부랴 마련하고 있는 안전 대책이 179명의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마련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나아가, 이번 참사 이후 그들이 큰 결심으로 세운 안전 대책의 유효 기간이 잠깐에 그치지 않기를, 우리나라 항공사와 공항 안전 대책이 피로 쓰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