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충당금 폭탄 시중은행, '예고된 태풍' 넘겼다
올해부터 변경된 회계 기준에 충당금 1조576억원↑
늘어난 비용 부담에도 실적 개선…유비무환 빛났다
국내 4대 시중은행들이 회계 기준 변경에 따라 올해 들어 새로 쌓은 충당금이 1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급격하게 불어나는 충당금은 실적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대부분 은행들은 늘어난 부담이 무색할 만큼 꾸준한 성적 상승을 이어가고 있다. 예고된 태풍을 앞두고 충실히 내실을 다져 온 은행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면서 일각에서 제기된 위기설을 기우로 만드는 분위기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부터 적용된 새 회계 기준(IFRS9)으로 인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의 대손충당금은 총 6조9339억원에서 7조9915억원으로 15.3%(1조576억원) 늘었다.
IFRS9의 핵심은 대출 만기까지 예상되는 손실을 추산해 미리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1년 동안의 부도확률을 계산해 기업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왔는데 IFRS9에서는 여신의 실제 만기까지 부도확률을 계산해 반영해야 한다. 이에 은행들의 대손충당금은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은행별로 보면 이에 따른 부담이 가장 컸던 곳은 신한은행이었다. IFRS9을 적용하면서 신한은행의 대손충당금은 1조6755억원에서 2조593억원으로 22.9%(3838억원) 증가했다. 증가율과 증가액 모두 조사 대상 은행들 중 가장 컸다.
이어 국민은행의 대손충당금이 1조6611억원에서 1조9283억원으로 16.1%(2672억원) 늘며 증가세가 가팔랐다. 우리은행은 2조796억원에서 2조3862억원으로, 하나은행은 1조5177억원에서 1조6177억원으로 각각 14.7%(3066억원)와 6.6%(1000억원)씩 대손충당금이 늘었다.
이처럼 대손충당금이 불어나면 영업비용도 따라서 늘게 돼 회사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금융연구원은 올해 은행들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30% 이상 급감할 것으로 예측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 같은 염려와 달리 은행들의 실적은 뚜렷한 개선 흐름을 나타냈다. IFRS9에 따른 대손충당금을 모두 반영하고도 올해 1분기 4대 시중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2조5193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3208억원) 대비 8.6%(1985억원) 늘었다.
가장 많은 충당금을 쌓아야 했던 신한은행의 경우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이 5346억원에서 6006억원으로 12.3%(660억원) 증가했다.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 역시 6635억원에서 6902억원으로 다소(4.0%·267억원) 늘었다.
대손충당금 부담이 가장 적었던 하나은행의 당기순이익은 4800억원에서 6340억원으로 32.1%(1540억원)나 증가했다. 우리은행만 이 기간 당기순이익이 6427억원에서 5945억원으로 7.5%(482억원) 감소했다.
이처럼 대규모 충당금 추가 적립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실적이 상향 곡선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사전 대비가 잘 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은행들은 감독기준에 따라 대손충당금 외에 대손준비금을 쌓아 왔다. 이를 통해 IFRS9으로 재평가 시 발생하는 충당금 차액을 충분히 메꿀 수 있었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첫 분기 순이익만 놓고 보면 회계 기준 변경 대비해 은행들이 보수적으로 대손준비금을 잘 적립해 왔던 것으로 평가된다"며 "대출에서 예상한 손실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면 충당금이 다시 환입되는 만큼 장기 지속성 측면에서 보면 IFRS9으로 인해 은행의 수익성은 더욱 탄탄해 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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