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4년 후 이야기…연상호 감독 연출
이례·이예원 성장세 기대케 해
스케일은 커졌고 볼거리는 풍성해졌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부산행'에서 느꼈던 짜릿한 쾌감과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던 스릴이 줄어들었다. 올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꼽혀온 '반도' 얘기다.
'반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로 텅 빈 극장가를 구할 구원 투수라는 타이틀로 기대를 받아왔다. 영화는 단 부산행'(2016) 이후 4년, 좀비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사람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다.
4년 전, 나라를 휩쓴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정석(강동원 분)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폐허가 된 반도로 돌아온다. 제한된 시간 내에 임무를 다하려던 순간,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좀비떼의 공격을 받는다. 이후 민정(이정현 분)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함께 필사의 탈출에 나선다.
'반도'는 '부산행'과 완전히 다른 영화다. '부산행'이 기차라는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좀비와 인간의 사투를 다뤘다면, '반도'는 폐허가 된 땅에서 각자의 욕망을 내세운 인간과 인간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며 한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풀어냈다.
'부산행'으로 'K-좀비물'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연 감독은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은 좀비떼들의 진화를 선보인다. 좀비떼들은 더 거대하고, 움직임 역시 빠르다. 후반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좀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영화 '월드워Z' 가 떠오른다.
도심이라는 넓은 배경을 활용한 액션은 카체이싱이다. '부산행'에서 볼 수 없었던 큰 스케일의 카체이싱 액션이 박진감이 넘치게 펼쳐진다. 카체이싱은 어느덧 성장한 아역 배우 이레가 놀라운 에너지와 스피드로 말끔히 해냈다. 감독이 '매드맥스'를 참고했다고 앞서 언급했는데, 그와 비견할 만하다. '서울판 매드맥스'가 이어진다.
오락 영화로서의 장점은 충분하지만, 관객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엔 아쉬운 점도 여럿 있다. '부산행', '창궐', '킹덤', '#살아있다' 등을 통해 대중은 이미 좀비물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좀비떼가 주는 재미가 크게 새롭지 않다. '부산행'은 좁은 공간에서 휘몰아치는 좀비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최고치에 다달았지만, '반도'는 공간이 넓은 탓에 좀비떼가 달려와도 긴장감이 이전만 못 하다.
포스트 아폴칼립스(종말 이후) 시대를 잘 구현했지만, 이곳에서 충돌하는 인간과 인간의 사투가 늘어지면서 서사 역시 헐거워졌다. '부산행'에서는 좀비떼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반면, '반도'에서는 좀비가 인간들의 전쟁 뒤로 밀리면서 좀비물 특유의 재미가 줄어들었다. '부산행'을 좋아했던 팬들 입장에서도 의견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부산행' 속 마동석급으로 빛나는 캐릭터와, 김의성에 버금가는 악인 캐릭터가 없는 점도 아쉽다. 굳이 비교하자면 여전사 느낌의 이정현이 마동석과 같은 포지션에 위치했고, 연기파 배우 김민재와 구교환이 악역을 맡았다. 이정현에게선 파괴력이 느껴졌으나, 김민재와 구교환은 극단적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보여주진 못했다. 특히 김의성에 집중됐던 '악'이 나눠지니 밋밋해졌다. 그러다보니 둘 다 전형적인 액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게임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주연 배우들은 제 몫을 했다. 앞서 언급한 이정현과 더불어 강동원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액션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다만, 감정 연기에선 정석의 내적 갈등이 얼굴에서 드러나지 않아 한계가 보인다. 놀라운 것은 이레와 이예원의 연기다. 성인 연기자들에 밀리지 않는 연기와 감정 표현은 이 두 아역 배우들의 향후 성장을 기대케 할 정도다.
연상호 감독은 "희망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반도'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보편적인 메시지로 전 연령층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거였다"고 밝혔다.
7월 15일 개봉. 115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