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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의 그래서]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입력 2020.10.04 07:00 수정 2020.10.04 21:58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김정은 친숙함 커져

북한 긍정적 평가 10배↑… 김정은 '귀엽다'고 생각

2년 뒤 우리 공무원 피살…잔혹한 코로나 방역 수칙

고모부·이복형 죽이는 야만적 성격 그대로 드러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천지에서 남쪽 수행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편에 선 리설주 여사가 김 위원장의 손하트를 받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자주 보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좋아진다는 말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라는 이론으로 입증됐다. 대상과 메시지에 자주 노출되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베일 속에 감춰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 보도다리를 걷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뜨거운 악수도 했다. 김 위원장이 한미 양국 정상과 회담하는 모습이 전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국민대 1학년 학생들 조사한 결과,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10배 이상(4.7%→48.3%) 올랐다. 김 위원장에 대한 연상어는 '독재자·핵·잔혹함·고도비만·폭력적·예측 불가능' 같은 부정어에서 '솔직함·호탕함·젊음·유머러스·귀여움·새로움' 같은 긍정어로 180도 바뀌었다. 단순히 대학생에게만 국한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김 위원장의 피규어·초상화·시계 등 '으니 굿즈'(김 위원장을 친숙하게 부르는 '으니'와 상품을 뜻하는 굿즈의 합성어)가 유통되기도 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당시 평양 옥류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김 위원장은 평양냉면을 "멀리서 가져왔다"고 설명하다가 "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이미지가 또 한번 바뀐 것은 최근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사살하는 만행 때문이다. 남북의 입장이 상충해 정확한 경위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악을 가정한다면 '우리 공무원은 업무 수행 중 북한 영해로 표류됐고, 북한은 공무원을 6시간 동안 방치하다가 총격 사살한 뒤 시신을 불태웠다. 그것을 지시한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이지만, 국내외 여론이 악화하자 서둘러 가짜 사과를 담은 통지문을 보냈다'는 게 된다.


경위야 어찌 됐든 민간인을 사살하는 북한의 만행은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제네바 협약은 전시 때도 민간인 사살을 금지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구실로 '국경 1km이내 접근하는 동물과 사람을 사살하라'고 했다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런 반문명적 수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권이란 게 없는 북한의 야만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했다. 특히 장성택은 머리 없는 시신을 북한 간부들이 이용하는 건물 계단에 보란듯이 전시했다고 한다. 그때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넘어갔지만, 우리 국민의 피살로 그 공포가 실감됐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고, 김 위원장이 '귀엽다'고 느낀 게 불과 2년 전이다. 우리는 북한과 김 위원장에 또 속을 뻔했다.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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