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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제조원 표기 자율화 놓고 ‘설왕설래’…득일까 실일까


입력 2020.11.04 07:00 수정 2020.11.03 16:40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9월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의무화→자율화’로 개정

제조업체 “소비자 알 권리 침해 및 제품 하향평준화 우려”

판매업체 “미투상품 발생, 시장 과당경쟁 등 부정적 요소 다분”

중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신라아이파크면세점에서 한국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뉴시스

화장품 포장에 제조사 이름을 넣는 문제를 놓고 화장품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화장품법은 제품 용기에 제조업자와 책임판매업자를 모두 표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최근 이를 ‘자율 표기’로 바꾸자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찬성과 반대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화장품 제조업체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불량 화장품 개발의 난립, 제품의 하향 평준화 등을 앞세워 반대하고 있다. 반면 판매업체는 저가 미투상품 발생과 가격차에서 발생하는 시장 과당경쟁 등 브랜드 경쟁력을 잃을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지난 9월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장품 제조원 자율표기 내용을 담은 화장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조업자 정보가 표기됨으로써 화장품 분야 주요 위탁 제조사의 독점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해외업자들이 유사품 제조를 의뢰해 국내 수출기업에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주요 배경이 됐다.


우리나라 화장품 업계는 크게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와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 디자인, 유통하는 ‘판매업체(화장품 브랜드)’ 둘로 나뉜다. 이에 따라 법안 개정에 대한 이해와 의견도 각자의 위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나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화장품 판매업체들은 이번 개정안을 두고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제조원이 고스란히 노출되다 보니 해외 경쟁 업체들이 판매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제조사와 계약해 유사한 제품을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제조원 표기로 인해 브랜드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게 이들의 핵심 논리다. 기껏 개발과 마케팅에 공들여 우수한 제품을 출시해도 한 순간에 영업기밀과 경쟁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특정 제품에 품질 문제 등 안전에 직접적인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화장품 판매업체가 이를 책임지도록 법안이 설계돼 있는데, 불필요하게 제조원을 노출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 제조원 표기는 특정 제조사에 대한 광고에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화장품 브랜드업계 관계자는 “제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제품에 대한 책임을 브랜드사가 맡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제조사를 굳이 제품에 표기해 경쟁사들에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며 “시장에서 잘 나가는 제품을 언제든 쉽게 베껴갈 수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도 “해외 유명한 화장품인 에스티로더의 갈색병을 예로 들었을 경우 그 누구도 이 화장품의 제조원 정보를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에스티로더라는 브랜드를 믿고 제품을 구매한다”며 “외국 시장만 하더라도 제조원 노출은 영업 기밀이라고 보고 제공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출도 문제다. 해외 브랜드가 국내 제조사에 접근해 유사한 제품을 개발·판매할 경우 최악의 상황에선 해외 진출이 물거품 되거나 과당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고 수출을 위해 내수용과 수출용 제품을 각각 따로 만들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적 부담이 뒤따른다”며 “이런 비용적 부담은 곧바로 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품을 단일화 시켜 관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세계 1위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에서 국내 브랜드들이 경쟁력을 잃는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프랑스, 영국 등 세포라 유럽 매장에는 ‘케이뷰티관’을 통해 국내 브랜드인 ‘메디힐’, ‘닥터자르트’ 같은 한국 브랜드의 마스크팩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브랜드 마스크가 인기를 끌자 세포라가 한국 제조사에 직접 연락해 자체 브랜드(PB) 제조를 의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세포라 유럽 매장들엔 국내 브랜드가 대거 빠지게 됐고, 이를 대신해 ‘메이드 인 코리아 마스크팩’이라며 ‘세포라’ 브랜드명을 단 마스크팩으로 대체하게 됐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케이뷰티가 타국에 알려지고 지속 성장하려면 우리나라 브랜드 제품들이 계속해서 해외 화장품 매장에 진열이 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국내 화장품 위탁 제조업체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면세점에서 중국인들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들을 살펴보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뉴시스

반면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대형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은 ‘소비자 알 권리’ 등을 앞세워 자율화 표기를 반대하고 있다. 제조원 표기를 없애면 불량 화장품이 난립할 것이고, 제품의 품질이 하향평준화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 K뷰티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제품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면에는 제조업체들의 제조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며 “제조원 표기를 하지 않게 되면 어떤 적합한 인증 절차를 받았는지 소비자들은 알 수 없게 되고, 제품이 하향 평준화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조원 표기로 인한 미투 상품 논란 역시 일부 제조사들의 문제로 보인다”며 “일사 일처방 원칙으로 하나의 처방은 한 고객사 외엔 제공하지 않는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콜마나 코스맥스처럼 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는 문제가 없겠지만, 제조원 표기로 인해 ‘광고 효과’를 보는 작은 제조사는 의무표기제가 없어질 경우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제품에 사명이 노출됨으로써 인정받을수 있는 기술력의 부분까지 차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만 유일하게 제조원 표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해외서는 이미 유사 제도가 있어 제조원 표기를 따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이 관계자는 “국내 판매업체들은 제조업체를 표기하는 규정이 해외에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FDA의 온라인등록을 통해 제조업자, 유통업자, 포장업자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유사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EU는 ‘화장품신고(CPNP)제도’를 갖추고 있어 제품정보를 일괄적으로 관리한다”며 “일본 역시 화장품은 약사법에 의거해 관리되고 있고, 캐나다는 내부라벨을 통해 제조업자를 표기한다”고 덧붙였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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