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요기요 매각 조건부 승인…DH “내달 전원회의서 적극적 설득 나설 것”
배달앱 외식업체 비중 10% 불과…음식배달 시장 전체로는 독과점 우려 낮아
지자체 공공앱, 쿠팡 이츠‧위메프오 등 후발 주자 진출 잇따라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합병을 놓고 공정거래위원회와 딜리버리히어로(DH) 양측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다. 핵심은 합병 승인에 있어 국내 음식배달 시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여부다.
배달앱 시장에 중점을 두고 있는 공정위와 달리 DH 측은 전화주문 등 배달 시장을 한층 넓게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내달 초 전원회의를 열고 DH와 배달의민족 간 기업결합 승인 조건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DH에 요기요를 매각하면 배달의민족 M&A를 승인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국내 배달앱 1위인 배달의민족과 2위 요기요가 합병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90%에 달하는 등 시장 독점의 우려가 있다는 데 따른 조치다.
업계에서는 당초 일정 기간 동안 수수료 인상을 제한하는 등의 조건을 예상했던 만큼 공정위의 요기요 매각 조건은 사실상 합병을 불허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사자인 DH와 배달의민족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DH 측은 “요기요 매각 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며, 추후 열릴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위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 제안은 기업결합의 시너지를 통해 한국 사용자들의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려는 딜리버리히어로의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어 음식점 사장님, 라이더, 소비자를 포함한 지역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DH 입장에서는 요기요를 매각할 경우 4조75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굳이 배민을 인수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공들여 키운 요기요를 매각하고 배민을 인수하는 것도 요기요와 배민 양측 내부에서 반발을 살 수 있어 부담이다.
반면 합병이 무산될 경우 한국 배달앱 시장 1위 탈환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현재 배민의 시장점유율이 약 60%, 요기요는 약 30% 수준으로 두 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DH는 공정위의 요기요 매각 조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내달 9일로 예상되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양사 합병 결정의 핵심은 ‘시장획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음식 배달 시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독과점이냐 아니냐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양사 합병으로 배달앱 시장 90%가 넘는 독과점 기업이 탄생할 것을 우려해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조건을 건 만큼, DH 측에서는 합병을 진행해도 시장 독과점 우려가 낮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음식 배달 시장을 배달앱 뿐만 아니라 전화 주문 등 외식업 전체로 확대하면 독과점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외식업체 경영 실태 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체 외식업체에서 배달앱을 이용하는 외식업체 비중은 2016년 5.9%, 2017년 6.2%, 2018년 7.6%, 2019년 11.2%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전체 외식시장에서 배달앱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모든 외식업체가 음식 배달을 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배달앱이나 전화 주문 등을 통해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만큼 합병에 따른 독과점 우려를 낮출 수 있는 논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 배달앱이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산업인 만큼 언제든지 후발주자들이 배달앱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점도 독과점 우려를 낮출 수 있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DH의 배민 인수 소식이 알려진 이후 서울, 경기도 등 전국 지자체에서 공공앱 서비스 론칭이 이어지고 있고 쿠팡이츠, 위메프오 등도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합병에 대해 공정위가 유독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2009년 미국 이베이가 G마켓 인수에 나설 때도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자 판매수수료율을 3년간 인상하지 말 것을 승인 조건으로 걸은 바 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쿠팡, 네이버 등 강력한 경쟁자가 잇따라 등장해 현재는 독과점 우려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