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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 기업①] '성장'보다 '생존' 우선…경영환경 불확실성 확대


입력 2020.12.21 07:00 수정 2020.12.18 20:08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주요 업종, 새해 불확실성 증대로 경영전략 수립 난관

기업들, 성장은 엄두도 못 내...긴축경영으로 '버티기' 나서

국내 주요 산업현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SK 울산 CLX,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포스코 고로 출선 장면, 현대차 울산공장 팰리세이드 조립 장면. ⓒ각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글로벌 경영환경을 뒤바꿔놓았다. 기업들은 수시로 돌출되는 변수에 대비해 성장을 멈춘 채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코로나19 이전의 경영환경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새로운 경영전략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마련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반(反)시장경제적 규제 철폐와 대립적 노사관계 해소가 시급하다.<편집자 주>


매년 연말이면 기업들은 한해 실적을 점검하고 새해 진일보된 목표 수립에 나서왔다. 생산설비 확충이나 신사업 추진 등을 통해 기업들은 성장을 모색했고, 이는 사회 전반에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라는 과실을 안겨줬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새해를 앞두고 경영전략을 수립하긴 해야겠지만 성장을 낙관할 만한 업종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워낙 커서 구체적인 사업 목표조차 설정하기 힘들 정도다. 사업계획을 수립해도 ‘긴축경영’이나 ‘현상유지’ 수준에 머무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0일 발표한 ‘2021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전국 30인 이상 기업 212개사 대상)’에 따르면 2021년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들은 경영계획 기조에 대해 49.2%가 ‘긴축경영’으로 42.3%는 ‘현상유지’로 답했다. ‘확대경영’이라는 응답은 8.5%에 불과했다.


그나마 새해 경영계획을 확정한 기업은 32.5%에 그쳤고, 초안 수준에 머문 기업은 28.8%였다. 나머지 38.7%는 불확실성으로 아예 초안도 수립하지 못했다.


2021년 경영계획 기조.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6일 발표한 ‘2021년 기업 경영환경 전망 긴급설문조사(매출 기준 1000대 기업을 대상)’에서도 전체 응답기업(151개사)의 71.5%가 내년도 경영계획의 ‘초안만 수립(50.3%)’했거나 ‘초안도 수립하지 못했다(21.2%)’고 답했다.


2021년 세계 경제는 이동제한 완화 및 경제주체 심리 개선 등의 영향으로 반등하겠지만, 코로나19 영향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 강화와 중국 산업경쟁력 강화에 따른 글로벌 경쟁 심화 등 다른 변수들도 상존한다.


경영환경 악화가 가장 뚜렷한 분야는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장치산업이다. 글로벌 거시경제 동향이 산업 수요와 직결되는데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성숙산업이고, 제품간 차별화가 크지 않은 범용(凡庸) 산업에 속해있다는 특성 때문이다.


SK 울산 CLX 전경.ⓒSK이노베이션

정유업계는 내년에도 글로벌 석유 수요가 저조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올해 극심했던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12월 보고서(MOMR)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석유 수요가 하루 평균 8999만배럴로 전년(9976만배럴) 보다 9.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수요도 9589만배럴로 큰 폭의 반등은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예측치는 OPEC의 7월 보고서에서 예측한 수치(9772만배럴)에 비해 하향 조정됐다. 내년 상반기 OECD 국가의 코로나19에 따른 수송연료 수요와 관련 시장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장기 불황 속에서 정유업계가 택한 길은 ‘복지부동’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수익성이 나지 않는 정제설비들을 폐쇄하며 생존 여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고, 국내 기업들도 정기보수 기간 조정 등을 통해 가동률을 낮추며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정 주기로 시황 사이클을 그려 왔던 업종이지만 이번엔 코로나19로 불황 사이클이 지나치게 길다”며 “노력으로 극복될 일이 아닌 만큼, 손실을 최소화하며 잘 버티고 살아남는 기업이 승자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현대중공업

유가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 조선업종도 새해 경영환경이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LNG 선박 관련 기술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진 국내 조선사들은 환경규제 이슈에 따른 LNG운송선과 LNG추진선 수요 확대로 일부 수혜를 입겠지만, 지금의 저유가 기조가 계속된다면 고가의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수주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최근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배럴당 50달러 내외의 유가로는 오일메이저들의 해양플랜트 발주를 이끌기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새해 신규수주는 올해보다는 늘겠지만 이는 올해 코로나19로 부진했던 것의 기저효과 정도에 불과하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전세계 신규수주량이 85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에서 최대 1100만CGT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예측치 범위가 넓다는 것은 그만큼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음을 의미한다. 올해 전망치인 440만GCT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이지만 지난해(990만CGT) 수준을 넘길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특히 발주에서 인도까지 2년 내외의 시간이 걸리는 조선업의 특성상 올해 수주부진에 따른 일감 부족 상황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돼 업계의 우려가 크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요인이 제거돼도 조선 업황이 2010년 이전의 조선업계 초호황기로 돌아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당시 구축된 설비와 인력을 유지하며 근근이 생존하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고로 출선 장면 ⓒ포스코

철강산업 역시 내년 전방산업의 수요 회복으로 올해보다는 나은 업황이 기대되고 있지만 이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조기 종식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 예상이다.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국내외 수요 산업 회복이 더딜 경우 생산 회복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업황 회복 여부 못지않게 중요한 게 탄소규제 대응 강화 이슈다. 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며, 당장 파리협정에 의거해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도 EU의 탄소국경세 도입, 중국과 일본의 단소중립 선언 등으로 기존의 사업방식으로는 정상적인 사업을 영위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3차 계획 기간이 도래함에 따라 탄소배출권의 유상할당 비중이 증가하면서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인 철강산업의 탄소배출 저감이 큰 폭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설비를 확대하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건 상당한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산업용 전기료 인상과 미중 무역갈등 심화에 따른 관세장벽도 철강업계엔 리스크 요인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신사업 분야를 제외한 전통적 철강 분야에서는 성장보다는 리스크 대응이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현대차 울산 2공장에서 팰리세이드가 생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전방산업은 업종별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은 공통적인 고민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내구재의 특성상 장기 불황이 자동차 교체주기 연장으로 이어져 구조적 수요 감소가 우려된다. 당장 내년에는 올해 코로나19로 묶여 있던 수요가 풀리며 판매가 늘겠지만 올해 감소분을 만회할 수 있을 만큼 수요가 증가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시장의 경우 개별소비세 인하 등으로 양호한 시장 상황을 유지했지만 해외 시장은 분위기가 다르다”면서 “올해 불황에 따른 소득 감소로 구매력이 감소한 소비자들이 새 차 구매보다는 기존 보유 차량의 수명을 연장하는 쪽을 택한다면 전체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수요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새해 판매목표 설정도 쉽지 않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 양적 목표 달성보다는 생산 효율화와 각종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당장 내년 목표보다는 내연기관의 전동화(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주도권을 잡는 중장기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기존 자동차 산업 후발 주자였던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서는 빠르게 약진하고 있는 만큼 경쟁도 더욱 치열해져 전기차 전용 플랫폼 등으로 기술적, 비용적 우위를 점하는 게 관건이다.


ICT(정보통신기술) 제조업 분야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반도체는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트렌드가 오히려 호재가 되고 있다. 새해에는 비대면 인프라 구축을 위한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비메모리 반도체 역시 5G, AI 등 신기술 활용 확대와 자율주행차, 스마트카 등 자동차 전장용 수요 확대에 힘입어 호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다소 부진했던 스마트폰 역시 5G 지원 스마트폰과 폴더블, 롤러블 등 새로운 폼펙터 등장으로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LCD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OLED에서 기술적 우위를 갖춘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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