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채권 매각 이익 2887억…1년 새 16.3%↑
채권추심 시장으로 흘러가 빚 독촉 가중 우려
국내 5대 금융그룹이 제 때 상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대출을 채권의 형태로 시장에 내다 팔아 거둔 이익이 1년 새 400억원 넘게 늘어나면서 그 규모가 지난해에만 3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흘러나간 부실 대출이 통상 채권추심 시장으로 흘러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 만큼 빚 독촉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금융그룹들의 부실채권 정리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출을 둘러싼 서민들의 고통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들어 3분기까지 신한·KB·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개 금융그룹들이 대출채권을 매각해 벌어들인 돈은 총 2887억원으로 전년 동기(2482억원) 대비 16.3%(405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추이를 놓고 볼 때 해당 금융그룹들이 대출채권 매각으로 지난해에 거둔 연간 이익은 3000억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금융사들이 대출 부실에 따른 손해를 조금이나마 만회하기 위해 관련 채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이다. 금융사들은 연체 등으로 발생한 부실채권에 원가 대비 10% 안팎의 싼 가격을 매겨 이를 시장에 파는 방식으로 손실을 보전하고 있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최근 부실채권 판매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곳은 KB금융이었다. KB금융의 대출채권 매각 이익은 같은 기간 685억원에서 1310억원으로 91.3%(625억원) 급증하며 조사 대상 금융그룹들 중 유일하게 10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다른 곳들도 이보다 액수는 적은 편이었지만 그 흐름은 대부분 비슷했다. 하나금융은 471억원에서 669억원으로, 농협금융은 166억원에서 296억원으로 각각 42.0%(198억원)와 78.8%(131억원)씩 대출채권 매각 이익이 증가했다. 신한금융 역시 164억원에서 208억원으로 26.8%(44억원) 늘었다. 반면 우리은행만 이 금액이 997억원에서 404억원으로 59.4%(592억원) 줄었다.
문제는 팔려 나간 부실채권이 주로 추심업체들 사이에서 유통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사들인 추심업체들로서는 일부라도 상환을 받아 이익을 올려야 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금융사의 손쉬운 부실채권 매각이 개인의 빚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는 구조적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도록 끊이지 않아 왔다.
더욱 염려스러운 대목은 앞으로 금융사들의 부실 대출 정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차주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 조만간 끝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체가 늘어나게 되면 금융사들의 대출채권 매각 규모도 지금보다 더 커질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초부터 코로나19 금융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사들에게 적극적인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주문해둔 상태다. 코로나19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이 같은 조치는 올해 3월에 종료될 예정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부실채권 매각 이전에 대출 연체에 따른 채무자의 압박을 최대한 줄여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담을 조금만 축소해 주면 빚을 갚을 수 있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여유 기간을 만듦으로써 금융사는 대출채권을 제대로 회수하고, 차주도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는 선순환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반적인 경기 여건이 나빠질수록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방안이 금융사 사이에선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이런 관성이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섣부른 대출 채권 매각은 금융사에게도 고객에게도 손실을 안기는 선택"이라며 "금융사 자체적으로 대출채권에 대한 시효를 연장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거나, 연체 채무자가 금융사에 상환 유예 혹은 원리금 감면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최대한 완전 상환을 유도하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