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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성의 여정] 그럼에도 김명수 사퇴는 안 된다


입력 2021.02.08 07:00 수정 2021.02.07 21:44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김기현 국민의힘 탄핵거래 진상조사단 단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탄핵을 추동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거짓말이었다. 워터게이트 의혹을 측근들 선에서 정리하려던 닉슨 대통령은 '나는 몰랐다'는 식으로 일관했고, 녹취 테이프가 공개되고 나서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야당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발단이었으나, 그의 정치 생명줄을 끊은 진짜 원인은 본인의 입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분노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임 부장판사가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녹취된 음성에는 그가 '탄핵 때문에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9개월 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다"고 하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사람인 이상 자신의 모든 대화 내용을 다 기억할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임 부장판사가 의혹을 제기했을 때에는 인정했어야 했다. 본인의 음성이 담긴 녹취 파일이 공개되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는 것은 다시 봐도 너무 옹졸하다. 여권 인사들도 이것 만큼은 옹호하기가 어려웠는지,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


임 부장판사의 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비록 1심에서 무죄가 났고, 사소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재판개입' 행위 자체는 있었다. 민주당 인사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김 대법원장과의 면담에 앞서 음성녹음을 준비하며 '불온한'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의 무게를 따진다면 김 대법원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누구보다 사법부 독립을 수호해야 할 김 대법원장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삼권분립을 훼손했다. 또한 거짓말로 법원의 신뢰를 추락시켰다. 대법원장도 거짓말을 하는데, 이제 어느 국민이 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는 추산조차 힘들다.


그럼에도 김 대법원장이 사퇴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지금 사임하게 되면 임명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갖게 되고 차기 정권까지 대법원장의 임기가 이어진다. 정권 말기 노골적인 친위 인사가 진행되는 마당에 더한 인사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당이 180석을 차지한 국회의 견제도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사안 전부터 친문 강경파들은 김 대법원장의 교체를 주장해왔다. 표면적으로는 김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상은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고 있는 법원에 대한 압박과 다름없다.


야권도 김 대법원장의 자진사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 대목에서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 대법원장의 버티기에 되려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식물 대법원장이 차라리 낫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정권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국가적인 비극이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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