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판관비 10조, 1년새 1조↑…임직원 급여에 5조 사용
전산費 증가폭 434억 그쳐, 비중 5%대로 감소…답보 상태
작년 주요 증권사 전산오류 800% 급증...배상금 역대 최고
"거래량 폭증으로 전산시스템 한계…고객신뢰 확보 우선"
증권사들이 지난해 언택트 흐름을 타고 유입된 동학개미의 수혜를 누리고도 정작 고객편의를 위한 전산투자에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증한 자산관리 수수료를 중심으로 거둔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임직원 급여를 사상 최고수준으로 높인 것과 대비된다. 급증한 거래량으로 인한 전산오류 피해를 겪은 투자자들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는 만큼 증권사들이 전산투자를 늘려 고객 불편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57개 증권사의 판매·관리비 총액은 10조101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 말의 8조8532억원 대비 14.1%(1조2484억원) 급증한 규모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역대 최대치이기도 하다. 판관비는 해당 기업이 1년 동안 임직원 급여, 전산운용비, 접대비, 광고비 등 업무 외적인 비용을 의미한다.
판관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임직원 급여다.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들은 총 5조5193억원을 임직원 급여로 사용했다. 1년 전의 4조5721억원보다 20.7%(9472억원) 늘어난 수치다. 증권사 임직원 급여가 급증한 건 역대 최대치로 치솟은 실적 때문이다.
지난해 증권사들은 2019년의 6조4560억원 대비 36.6%(2조3658억원) 늘어난 8조8218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시현했다. 영업이익은 매출액에서 매출원가와 판관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즉, 증권사들은 지난해 판관비를 제외하고도 지난해 8조원의 넘는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지난해 증권사들의 호실적을 이끈 것은 동학개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풀린 대규모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쏠리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증시입성이 활발해졌다. 실제로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2019년 말 2940만개에서 지난해 말 3620만개로 23.1%(680만개) 늘어났다.
특히 비대면을 활용한 계좌개설이 급증했다. 국내 5대증권사(미래에셋·NH증권·한투·KB·삼성)에서는 지난해 월 평균 72만9000개의 신규 계좌가 개설됐는데, 이 가운데 비대면으로 개설된 계좌가 65만8000개로 대면 개설 건수인 7만1000개보다 9.3배 더 많았다.
시장흐름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으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의 전산투자 비용은 답보상태를 이어갔다. 지난해 증권사들이 전산운용에 투입한 금액은 5802억4862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 말의 5368억2711만원보다 8.1%(434억2151만원) 늘어난 규모다. 급여증가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오히려 증권사 전체 판관비에서 전산운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6.1%에서 지난해 5.7%로 0.4%포인트 하락했다. 그만큼 증권사들이 전산투자에 인색했다는 의미다.
문제는 급증한 거래량을 견디다 못해 증권사들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지속해서 전산오류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사상 처음으로 국제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키움증권의 MTS에서 원유 관련 상품 거래가 중단되는 사고가 났다. 같은 해 9월 공모주열풍을 일으켰던 카카오게임즈의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 당시 급증한 접속량으로 인해 한국투자증권 MTS에서 전산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산오류의 급증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미래에셋·NH투자·한투·신한금융투자·키움증권·하나금융투자 등 6개 증권사에서 발생한 HTS·MTS 오류 건수는 전년 대비 794.9% 급증한 9477건을 기록했다. 전산오류로 해당 증권사들이 투자자들에게 배상한 금액도 1년 새 843.5% 폭증한 역대 최대 규모인 91억3853만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1월 4일에도 새해 첫 개장과 동시에 급증한 거래량을 견디지 못하고 KB증권과 NH투자증권의 MTS에서 매매거래가 불통이 되는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 지난 19일 삼성증권 MTS에서도 일부 거래가 실행되지 않는 등 전산오류로 인한 투자자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이 전산투자를 늘려 시스템 오류로 인한 투자자 불편을 줄여 고객신뢰 확보를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거래량이 폭증하면서 각 증권사들이 이전에 마련해놓은 전산시스템 역량으로는 이를 감당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거래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고객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트래픽 확대 등 시스템 부문을 확보해 불편을 줄이는 전략을 최우선으로 채택하지 않으면 향후 지속적인 수익 창출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