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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㉚] 서예지 그리고 박나래


입력 2021.05.21 13:21 수정 2021.05.22 15:4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대중은 왜 그들을 버리지 않았을까

사달을 키운 '다른 변수' 인식

'나 홀로 책임론'에 문제의식

배우 서예지와 희극인 박나래 ⓒ데일리안 류주영기자, 뉴시스 제공(왼쪽부터)

지난 13일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흥미로운 풍경 두 가지가 펼쳐졌다. 하나는 전대미문의 ‘조종설’이라는 단어를 수식어로 달고 기사 제목에 연일 오르내렸던 배우 서예지가 인기상을 받은 것, 다른 하나는 ‘성희롱 논란’에 휩싸인 희극인 박나래가 TV 여자예능상 시상자로 나선 장면이다.


서예지가 받은 틱톡 인기상은 TV·영화 부문에 오른 후보자(남자 35명, 여자 34명) 가운데 최다 득표한 남녀 1인에게 돌아간다. 시상식 열흘 전인 5월 3일부터 10일까지 틱톡에서 투표가 진행됐다. 남자 부문은 김선호가 130만 표, 여자 부문은 서예지가 78만 표로 1위를 차지했다. 박나래는 전년도 해당 부문 수상자로서 시상에 나섰으니, 이 또한 명분이 있다.


하지만, 하고자 한다면 ‘배제’도 가능했다. 애초에 서예지를 TV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리지 않았다면 인기상 후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 이유를 내세워 다른 시상자를 세웠다면 박나래는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상예술대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정-비공정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한 선택이 가능했던 배경을 짚어 보자는 것이다.


서예지, 감사인사 ⓒ소속사 SNS 갈무리

지난 4월 배우 서예지의 전 남자친구 김정현에 대한 ‘조종설’이 불거졌다.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현실감각과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심리적 학대’ 행위)이 연예 기사에 등장하는 미증유의 상황이 발생하자 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연이어 학폭·학력 위조·스태프 갑질 의혹이 터져 나왔고, 광고계는 물론이고 출연 예정이던 드라마 제작사 측도 일찌감치 ‘손절’하고 선을 그었다.


그런 서예지가 인기상을 받은 것이다. 사실 ‘대반전’이라 부를 만한 역전의 분위기는 그가 주연한 스릴러 영화 ‘내일의 기억’ 개봉에서 시작됐다. 함께 주연한 배우 김강우의 관심 촉구 읍소도 있긴 했지만, 대중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논란에도 영화를 보고 싶었고, 보니 볼 만했고, 그러니 다른 이도 보는 것이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배우 공유와 박보검의 블록버스터 대작 ‘서복’이 지키고 있던 자리였다.


지난 3월 CJ ENM이 야심 차게 개설한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와플’이 새로운 웹예능 ‘헤이나래’를 선보였다. 2회차 영상이 업로드되고 성희롱 논란이 불거졌다. 제목의 앞부분을 뜻하는 헤이지니와 공동 주연인 박나래가 소품으로 등장한 암스트롱맨이라는 인형의 플라스틱 팔을 늘려 다리 사이에 끼우며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에 문제가 제기됐다.


박나래는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올렸다. 자필로 쓴 편지에서 “방송인으로서 또 공인으로서 한 방송을 책임지며 기획부터 캐릭터, 연기, 소품까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저의 책임과 의무였는데, 저의 미숙한 대처능력으로 많은 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렸다. 그동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데,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많은 분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앞으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더 깊게 생각하는 박나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심이 담긴 편지에 일단락이 되는 듯했다.


‘헤이나래’ 논란은 4월 ‘사건’이 되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박나래를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국민신문고에 올라왔고, 서울 강북경찰서가 이를 접수해 수사에 나섰다. 고발인 조사를 마치고, 영상 분석을 거친 후 피고발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4월의 마지막 날 예고됐다. 박나래는 바로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며 대중에게 심려 끼치고 있는 점에 대해 다시금 사과했다.


박나래의 경찰 출두가 이뤄지기 전, 국내외 언론이 ‘과잉’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먼저 한겨레는 지난 10일 보도를 통해, 대법원 판례 및 변호사 등 전문가 의견을 통해 무혐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 “각하 사유가 명백한데 수사를 진행하면 결과적으로 과잉수사가 된다. 젠더갈등이 집합된 문제인 만큼 엄격하게 법리만 따져서 원칙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경찰 내부 인사의 목소리도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2일자 보도에서 ‘서구의 시각에서는 논란이 될 여지가 없는 코미디’라면서 ‘양성평등이 확산해 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특수성, 성희롱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일을 키웠다고 해석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눈물을 참지 못한 박나래 ⓒ방송화면 갈무리

어떤 식으로든 이슈가 사그라들지 않은 상황에서 박나래가 5월 13일 시상자로 나섰다. 진행자인 신동엽은 논란과 그 중심에 선 후배에게 마음이 쓰이는 듯 ‘키워드’는 말하지 않으면서도 위로를 전했고 공감을 시도했다. 신동엽이 “최근 들어 마음고생 다이어트로 살이 좀 빠졌다”고 말하자 박나래는 “과학을 이기는 게 따로 있더라”고 답했다. 신동엽은 한 발 나아가 “박수 한 번 달라”고 참석자들을 향해 말했고 박나래는 “진땀이 난다”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남성의 성적 욕망에 모두가 익숙해지도록 오래도록 조성돼 온 미디어 환경, 그 안에서 선을 넘지 않는 영리함과 타고난 연기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배의 노력과 후배의 반응은 다음 날까지 보도됐다.


자,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상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백상에서의 풍경이 가능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중이 박나래와 서예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마음을 읽었기에 백상 측은 후보에서 서예지의 이름을 빼지 않았고, 표로 드러난 대중의 식지 않은 마음 덕에 인기상을 받을 수 있었다. 대중의 뜻을 알기에 백상뿐 아니라 여러 방송사의 프로그램들도 박나래를 계속해서 기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두 사람을 ‘손절’하지 않았을까. 손절,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 대중이라는 집단의 시각은 냉정하고 그 힘은 절대적이다. 내 마음의 저장 리스트에서 삭제하고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보다 계속 보는 게 즐거움의 덕이 있어서다. 대중이 마음에서 퇴출해 손절한 연예인의 이름을 우리는 바로 떠올릴 수 있다. 또 그렇다면 대중은 왜 비호감의 마음을 돌려세웠거나 호감이 흔들리지 않았을까.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사달의 ‘발단’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연인 조종설이라는 사달의 발단은 서예지의 전 남자친구 김정현와 관련돼 있다. 김정현과 또 다른 여자 연예인과의 열애설이 보도됐고, 여자 연예인 측의 소속사는 열애설에 선을 그으며 김정현의 이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고 알렸다. 그러자, 김정현의 소속사 측은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는데 무슨 이적이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관건이 된 ‘계약 기간’은 김정현의 드라마 ‘시간’ 하차 이유로 직결됐다. 만일 건강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하차하고 활동을 중단한 것이라면 계약은 한 달 남짓 남은 것이 되고, 자의적으로 하차하고 활동을 멈춘 것이라면 그 기간만큼 계약은 자동 연장된다는 것이다. 첨예한 입장 차 속에 ‘조종설’이 알려졌으니 계약은 한참 남은 상황이 되고, 김정현 영입을 논의하던 회사 측은 본의와 다르게 상도를 어긴 셈이 됐다.


서예지의 여러 가지 의혹에 화가 났던 대중은 김정현의 열애설로 시작된 이적설, 현 소속사와 영입하려던 쪽의 문제에 왜 서예지가 ‘소환’됐는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제기된 여러 의혹의 진위 이전에 ‘발화점’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한바탕 소동 후, 김정현은 소속사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자유의 몸이 됐다.


자필 사과문 ⓒ박나래 SNS 갈무리

박나래에 대해서는 이슈가 커진 모든 책임을 혼자 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분위기 전환의 시작이 됐다. 언행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과연 그것이 박나래가 말하듯 기획부터 캐릭터 설정, 소품까지 챙기는 게 출연자가 전적으로 책임질 일인가, 콘셉트를 기획하고 캐릭터를 설정하고 해당 회차 소재를 정해 그에 맞춰 소품을 준비한 제작진의 책임이 더 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더불어, 유튜브 방송이라는 게 방송물인지 통신물인지 기준이 모호하고 통신물의 경우 자율규제가 적절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와 방송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이견 가운데 위치한다. 현시점에서는 대중의 비난이 가장 큰 질책인 상황에서, 청원이 있어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정보통신망법 또는 아동보호법 위반을 적용하려면 먼저 해당 영상이 ‘음란물’인지에 대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법조 전문가들 의견대로 검찰에 기소되고 법원의 음란물 여부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적은 가운데, 관련 댓글에서 확인되듯 젠더 갈등으로 초점이 옮겨진 가운데, 박나래만이 피고발자로서 경찰 조사를 받는 것이 과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사달(사고나 탈)을 키운 발단이 선정적 편집 등 제작진의 잘못된 판단, 양성평등 확산 속 커지는 상대적 박탈감과 대립양상에 있다는 것에 대중이 공감한 것이다.


사실, 복잡한 설명보다 직관의 설명력이 클 때가 있다. 대중은 서예지와 박나래가 한국 연예계에서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보기를 원한다. 봤을 때 불편한 감정보다 싫지 않은 감정이 크기 때문이고, 아직 못 본 재능이 있고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하리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매력지수가 높고 호감이 바닥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싫지 않은 감정’을 호감으로 돌려세우는 몫은 두 사람에게 달렸다.


대중 연예인의 숙명은 당장 촬영장에 있는 제작진의 칭찬보다 후일 이를 본 관객이나 시청자의 박수를 받아야 한다. 한 명은 이를 너무 과하게 했고, 다른 한 명은 오랜 무명을 잊지 못해 현장에서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다 탈이 났다. 그 중간쯤에 두 사람의 살길이 있다. 바닥에 가 보면, 길 끝에 서 보면, 힘은 대중에게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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