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개정 간첩법으로 우리 국민 구금
우리는 '북한' 관련 행위만 간첩죄 적용
우리 기술 유출 막기 위해 범위 확대 필요성 ↑
개정안, 국회 문턱 못 넘고 계류 중
중국이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한 개정 '반(反)간첩법'을 적용해 우리 국민을 체포·구금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간첩법 개정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회에는 21대에 이어 22대에서도 간첩의 범위를 '적국(북한)'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부재하면서 여전히 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국 반도체 업체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기술자가 A씨가 간첩 혐의로 중국 당국에 구속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근무했고 이후 중국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서 일했던 한국 교민 50대 A씨는 지난해 말 간첩 혐의로 중국에서 체포됐다. 중국은 지난해 7월부터 간첩 행위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넓히는 내용으로 반간첩법을 개정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이 이 법 개정으로 구속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국회에서 잠자는 간첩법 개정안의 통과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간첩죄 조항은 형법·군형법에 규정돼 있다. 두 법에는 적국(북한)에 기밀을 누설할 경우 등에만 간첩 혐의를 적용하고, 적용 혐의도 군사상 비밀 등에 한정되어 있다. 이렇다 보니 국익을 해치는 정보를 수집·누설해도 전달 상대가 북한이 아니면 군형법과 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이런 탓에 간첩 행위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의 간첩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3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도 말로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간첩법을 신속히 통과시키자고 다시 적극적으로 민주당에 제안한다"고 했다.
이어 "간첩법의 개정만으로는 안 된다. 간첩법이 바뀌어도 적용해서 제대로 수사할 곳이 민주당 정권의 대공수사권 폐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대공수사권 정상화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에 맞춰 각 당은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3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의힘에서는 주호영·윤상현·김건·박충권·인요한 의원 등이 형법 제98조 간첩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상당수의 의원들이 형법 관련 조항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군형법 개정안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대표발의했다.
이들 법안들은 주로 '적국'으로만 제한되어 있는 간첩죄 적용의 범위를 '외국' 혹은 '외국인단체' 더 나아가 '비국가 행위자' '반국가단체'로 규정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군사상 기밀'에만 제한됐던 간첩 행위를 '산업 안보' '국가핵심기술 및 방위' 등으로 확장하는 안도 포함한다.
다만 이들 법안은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여야 모두 법안 취지에 공감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법안을 심사해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 등 여야 간 정쟁으로 자주 열리지 않아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21대에도 발의된 법안들이지만 국회 법사위 1소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간첩 행위의 범위나 국가 기밀 유출 행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 처리되지 못했다. 여야 모두 이에 공감하는 사안이지만, 국가 기밀 유출 행위의 범위 등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조속한 논의 착수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요한 국민의힘 의원은 31일 데일리안에 "북한만 간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기업의 비밀을 쉽게 처벌 없이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발의한 것"이라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간첩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국군정보사령부 첩보요원 신상정보 유출사건의 경우 중국 동포에게 누설한 사건에 대해 간첩죄가 아닌 군사기밀누설죄만 적용되어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며 "여야 모두 간첩법 개정에 공감하고 있지만 정쟁으로 법안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실정인데 국익을 위해서는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이루어야 하는 만큼 국회가 하루빨리 법안처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