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 리스크 보여주는 지표
1년 만에 60조 넘게 불어나
밸류업 위해선 최소화해야
대출 '옥석 가리기' 불가피
국내 5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운데 실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위험가중자산이 한 해 동안에만 60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불어난 위험가중자산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밸류업 계획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만큼, 은행들로서는 상대적으로 잠재 위험이 큰 서민 대출을 두고 옥석 가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은행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지면서 애꿎은 실수요자들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은 979조10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62조1674억원) 늘었다. 지난해 연간 증가 폭이 34조8440억원임을 감안하면 세 분기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위험가중자산이란 금융기관의 자산을 위험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계산한 지표로, 은행의 안정성과 자본확보 능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중 상대적으로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자산이 얼마인지를 따질 수 있는 값이다.
위험가중자산이 확대된 건 기업대출의 증가와 맞물려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이들 5대 은행의 원화대출은 101조8620억원 증가했는데, 이 중 기업 대출이 63.3%를 차지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에 제동을 걸면서 은행들은 기업금융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올해 들어 은행들은 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강화하면서 위험가중자산 관리가 더 중요해진 상황이다. 위험가중자산이 늘면 보통주자본(CET1)비율이 낮아지고, 주주환원 여력이 작아져서다. 올해 국내 금융지주의 CET1 목표치는 13%내외로, 이에 따라 금융지주들은 내년 위험가중자산 증가율을 4~6%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환율 상승도 은행권의 위험가중자산에 부정적 요소다. 외화대출은 원화로 환산 후 위험가중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외화대출 평가액도 오르고 이는 곧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이어진다.
문제는 위험가중자산을 억제하기 위한 은행들의 여신 관리가 서민들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위험 가중치가 높은 개인사업자 대출, 중소기업 대출 등을 조이게 되면 서민들의 대출 절벽은 더 높아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위험가중자산 관리를 위해 은행들은 우량대출 위주로 취급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에서도 은행들의 이러한 리스크 관리 행태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7일 중소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최근 금융권 자금 흐름을 보면 손쉬운 가계대출과 부동산 금융은 확대되는 반면, 기업에 대한 생산적 금융은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느낀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들의 밸류업 계획을 위해서는 은행들이 위험가중자산 관리에 만전을 가할 수밖에 없다"며 "안전한 대출 취급이 중요한 만큼 중소기업 대출보단 대기업 대출 위주로 취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