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M 등에 업고 역대 최대 23조 영업익 달성
삼성전자, 비메모리 적자 감안해도 하이닉스와 2~3조 차이
HBM3E 재설계·HBM4 개발 동시 추진 삼성, 주도권 가져올지 관심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영업이익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반도체 저가 공세, 모바일·PC 등 주요 응용처 회복 부진 등 동일한 악조건 속에서 양사간 희비가 교차한 것이다. 실적을 가른 주 요인으로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데이터센터향 AI(인공지능) 메모리가 꼽힌다.
1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66조1930억원, 영업이익 23조4673억원(영업이익률 35%), 순이익 19조7969억원(순이익률 30%)을 달성,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매출은 기존 최고였던 2022년(44조6216억원) 보다 21조원 이상 높은 실적을 달성했고, 영업이익도 메모리 초 호황기였던 2018년(20조8437억원)의 성과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HBM 매출이 전년 대비 4.5배 확대돼 SK하이닉스가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데 역할을 했다. 낸드의 경우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중 eSSD 매출은 전년 대비 300% 이상 성장하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4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12% 증가한 19조7670억원, 영업이익 또한 15% 증가한 8조828억원(영업이익률 41%)에 달했다. 순이익은 8조65억원(순이익률 41%)을 기록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CFO)은 "PC, 스마트폰 등 컨슈머 제품 수요 둔화 속에서도 HBM과 eSSD 등 데이터센터향 AI 메모리 제품이 전체 수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전날 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DS(반도체) 부문 실적이 매출 111조1000억원, 영업이익 15조1000억원으로 전년과 견줘 67%, 30% 증가했다고 밝혔다.
고부가 제품으로 분류되는 HBM, DDR5 등 판매 호조로 삼성 반도체가 연간 실적을 개선시킨 것은 고무적이나 경쟁사와 비교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SK하이닉스는 삼성 반도체 실적을 8조원 이상 따돌렸다.
하이닉스가 메모리 사업 위주로 사업을 하고 있고 삼성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시스템LSI(반도체 설계) 등 비메모리 사업에서 매해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뼈아픈 대목이다.
증권가는 비메모리 사업에서 삼성이 지난해 5조원 안팎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IBK투자증권은 4조7340억원, 대신증권은 5조2270억원, iM증권은 5조5090억원의 영업손실을 추정했다. 비메모리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삼성 DS 부문 연간 영업이익은 SK하이닉스를 2~3조원 하회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같은 희비는 선단-레거시(범용) 제품간 디커플링이 주 요인으로 분석된다. 비싼 제품 비중을 적극적으로 늘린 곳이 이익을 많이 챙겼다는 의미로, 엔비디아에 HBM을 가장 많이 공급한 SK하이닉스가 해당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HBM과 eSSD 등 AI 메모리 제품 판매를 적극 늘렸다. 작년 3월 업계 최초로 HBM3E 8단을 공급한 데 이어 같은 해 4분기에는 12단 제품을 업계 최초로 공급하며 HBM 1위 리더십을 이어갔다. 그 결과 연간 HBM 매출은 전년 대비 4.5배 이상 확대되며 D램 사업 실적을 주도했다.
하반기 PC, 모바일 등 주요 응용처 재고 조정, DDR4/LPDDR4 등 레거시 제품 가격 하락 등 리스크도 상존했지만 HBM, 서버향 DDR5 고부가 제품 출하에 집중한 결과 ASP(평균판매단가)가 상승했다. 4분기 전체 D램에서 HBM 매출은 40%에 달한다.
삼성전자도 상황은 비슷했다. 주요 데이터센터 및 테크 기업의 AI향 투자로 HBM 및 서버향 고용량 DDR5 수요가 견조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 전체 매출은 4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그러나 모바일, PC 등 주요 시장 재고 조정, 레거시 반도체 가격 하락이 발목을 잡았다. 또한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요구대로 HBM3E 개선 제품을 내놓기로 하면서 수요가 개선 제품으로 옮겨간 것도 한 몫 했다.
삼성전자는 "4분기 HBM 매출은 당초 매출을 일정 부분 하회한 1.9배 수준의 성장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DS투자증권은 "D램 내 HBM 매출 비중은 4분기 30% 수준까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ASP 상승을 견인했는데 레거시 재고 소진이 같이 발생하며 상승 효과가 다소 희석됐다"고 설명했다.
메리츠증권은 4분기 DS 부문 부진에 대해 "부진재고의 후행적 비용 반영, 여전히 높은 레거시 판매비중, HBM 수율·원가 안정화 미비"를 들었다.
SK하이닉스에 메모리 1위 자리를 내준 삼성 반도체는 올해 엔비디아향 HBM3E 공급, HBM4 적기 개발·양산, 경쟁사 영업이익 추월 등 다양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날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로부터 HBM3E 8단 공급 승인을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삼성은 오히려 "HBM3E 개선 제품을 1분기 말부터 양산 공급할 예정"이라며 그에 따른 HBM 일시적 수요 공백을 언급했다. 외신이 보도한대로 엔비디아향 HBM3E 공급이 본격화된다면 수요 공백이 발생할리 없다.
다만 삼성은 HBM3E 재설계, HBM4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며 삼성 기술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고객 수요가 올 2분기 이후 HBM3E 8단에서 12단으로 빠르게 전환할 것"이라며 "고객 수요에 맞춰 HBM 공급량을 전년 대비 2배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6단 제품의 경우 샘플을 제작해 주요 고객사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경쟁자인 SK하이닉스의 방어전도 만만치 않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3E(5세대 HBM) 공급을 늘리고 HBM4(6세대 HBM)도 적기 개발해 고객 요청에 맞춰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SK하이닉스는 "HBM4 제품은 이미 기술 안정성과 양산성 입증된 1b 나노 공정을 적용해 개발 진행중이다. 올해 하반기 중 개발과 양산 준비 마무리하고 공급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HBM4 공급은 12단 제품을 시작으로 이후 16단은 고객 요구 시점에 맞춰 공급할 예정이며 내년 하반기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특히 HBM4의 경우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와 원팀 체계로 협업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차세대 HBM 시장 리더십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이미 올해 HBM 물량은 완판됐고 내년분 물량도 논의를 시작한 상태다. 회사측은 "일부 고객과 HBM 2026년 공급 물량 논의를 시작했고 올해 상반기 중 내년 물량 대부분에 대해 가시성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SK하이닉스를 잡고 다시 메모리 1위 기업(영업이익 기준) 지위를 탈환할지, SK하이닉스가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삼성의 방어전에 성공할지는 AI 메모리 로드맵 이행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
양사 모두 미국의 대중국 제재 확대, 중국 딥시크의 저비용·고성능 AI 모델 출시,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변수 속에서 고부가 제품 비중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올해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18~20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추정한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32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