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이하여신에서 기업차주 몫 71.1%
고금리 장기화에 트럼프 관세 정책까지
"금리 인하기에도 부실 위험 길어질듯"
국내 5대 은행이 떠안고 있는 부실 대출 가운데 기업의 몫이 7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장기 연체의 늪으로 빠지는 여신 중 거의 대부분이 기업의 몫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고금리 터널 속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백기를 들면서 은행의 부실 리스크가 속수무책 쌓이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대출이 금융권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에서 발생한 고정이하여신 중 기업 차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71.1%로 전년 동기 대비 3.3%포인트(p) 증가했다.
은행의 부실채권은 통상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된 채권으로, 금융사가 내준 여신이 석 달 넘게 연체된 것을 뜻한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고정이하여신 내 기업 비중이 80.0%로 같은 기간 대비 11.0%p 급증했다. 우리은행 역시 7.2%p 증가해 74.2%를 기록했고, 농협은행은 2.1%p 늘어 69.4%를 보였다. 반면 하나은행은 고정이하여신 내 기업 비중이 64.9%로 같은 기간 대비 22.4%p 크게 줄었고, 신한은행도 64.7%로 1년 전보다 0.08% 감소했다.
이는 최근 1년 동안 기업 부실채권이 급증한 탓이다. 최근 한 해 동안 은행에서 늘어난 고정이하여신 1조2402억원 가운데 82.6%에 해당하는 1조252억원이 기업차주에서 나왔다.
은행별 기업 고정이하여신을 보면 국민은행이 1조1766억원, 농협은행은 1조296억원으로 각각 73.6%와 53.1%씩 증가하며 1조원을 넘어섰다. 우리은행 역시 5330억원으로, 하나은행도 6105억원으로 각각 17.5%와 26.5%씩 관련 액수가 늘었다. 신한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만 6216억원으로 0.5% 줄었다.
이렇게 기업 부실이 폭증한 배경에는 예상보다 길었던 고금리 여파가 자리하고 있다. 높은 금리로 인해 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진 것이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에 따라 한은 기준금리는 1년 반 넘게 연 3.50%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었다.
문제는 기준금리가 본격적으로 인하기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기업 부실채권이 줄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단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 주요국을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카드를 꺼내 들면서다. 특히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은행 역시 올해 1월 금리를 동결한 이후 향후 금리의 방향에 대한 고심이 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관세 폭탄'의 안전지대가 아닌 상황에서 선뜻 금리를 인하하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정책이 환율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환율 상승 또는 수입 물가 상승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다"며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고, 기업의 부실채권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