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한진해운 자산인수 과연 득일까?
시장가격 따른다면 용선·사선 인수 의미 없어
중복 영업망 인수 불필요…플러스 요인은 미주 영업망 정도
한진해운 사태가 사실상 ‘청산 후 현대상선에 우량자산 매각’으로 가닥이 잡힌 가운데, 이 방안이 현대상선의 규모 확대를 통한 시너지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필요한 중복 자산을 현대상선에 떠넘기는 수순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한진해운 관련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인수해 해운업 경쟁력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진해운의 회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한진해운 청산 이후 국내 해운업 경쟁력 약화 등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놓은 대응책이다.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유·무형 자산 중 잔존가치가 있는 부분을 흡수해 규모를 키워 한진해운이 해오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날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으로 언급한 것은 선박, 영업, 네트워크, 인력 등이다.
하지만 정작 우량자산 인수 주체로 지목된 현대상선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한진해운의 자산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한진해운은 이미 자구계획 이행 과정에서 핵심 자산의 상당부분을 한진그룹 계열사 등에 매각했다. 부산신항만과 평택 컨테이너터미널 지분 등 국내 핵심자산은 물론 아시아 8개 항로 영업권과 베트남 틴깡가이멥 터미널 지분 등이 (주)한진 수중으로 넘어갔다.
보유 선박들도 용선(선주들로부터 빌린 선박)은 선주들에 의해 회수되고, 사선(자체 보유 선박)은 채권자들에 의해 가압류되고 나면 남은 게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국내에서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통해 가압류를 피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협약을 맺은 지역에 한해 금지명령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법 미적용 지역에서는 가압류가 불가피하다.
이미 한진해운의 사선인 컨테이너선 ‘한진로마호’가 싱가포르항에서 가압류됐고, PIL로부터 용선해 운영하던 ‘한진멕시코호’는 PIL이 용선료 체불을 이유로 운항을 멈췄다.
남아있는 선박도 현대상선이 승계하는 게 이득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해운 시황 악화로 기존 한진해운의 용선주들로서는 배를 회수해도 빌려줄 곳이 마땅치 않아 현대상선이 승계하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게 정부와 채권단의 판단이지만, 어차피 시장 가격이 바닥이라면 다른 용선주와 협상해도 조건은 크게 다를 게 없다.
현대상선이 추가로 배가 필요하다면 여러 용선주와 접촉해 가장 좋은 조건을 택할 일이지 굳이 한진해운이 용선해 쓰던 배를 승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기존에 한진해운과 선주가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용선을 승계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보유한 사선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현대상선이 인수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법원은 한진해운 청산 과정에서 채권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산을 가장 높은 가격에 매각할 의무가 있다.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한진해운의 사선을 현대상선에 헐값에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해운시황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인수 경쟁을 통해 가격이 크게 오르진 않겠지만, 이는 다른 선박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상선이 사선을 구입할 여력이 있다면 여러 매물들을 검토해야지 한진해운의 사선으로 매입 대상을 한정한다면 이득이 될 게 없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용선이건 사선이건 시장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이 아니라면 현대상선에 승계토록 하는 게 이득이 될수 없는 게 상식이 아니겠느냐”면서 “잘못하면 현대상선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게 아니라 현대상선에 떠넘기는 식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기존 한진해운이 보유한 영업망과 해외 네트워크, 인력 등 무형자산의 경우 현대상선이 승계하면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1+1=2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 역시 대부분의 지역에 영업망과 관련 인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복되는 부분은 굳이 승계할 필요가 없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아시아와 유럽 지역 영업에 강점을 갖고 있어 이 지역에서는 한진해운의 영업망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대상선이 상대적으로 약세인 미주 지역 영업망 정도가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한진해운의 기존 영업망 중 우리와 중복되는 부분이나 우리가 흡수해 확장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을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다만 한진해운이 우리의 1.5배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는 만큼 미주 지역 네트워크가 좀 더 촘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언급한 한진해운의 ‘알짜자산’이라고 해봐야 일부 무형자산에 불과해 현대상선으로의 승계가 즉각적인 규모 확대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긴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한진해운 자산 중 어떤 부분이 승계 가능하고, 승계시 이득이 될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서 “정부 및 채권단과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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