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주도 증세론 촉발이 ‘김동연 패싱’ 논란으로 체면구긴 기재부
예산 정국에 기재부 역할론 재등장, 김 부총리 SNS로 소통 나서
당정주도 증세론 촉발이 ‘김동연 패싱’ 논란으로 체면구긴 기재부
예산 정국에 기재부 역할론 재등장, 김 부총리 SNS로 소통 나서
문재인 정부가 물리적인 시간으로 출범 100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경제대통령이라는 범주로 좁히면 '타입 갭'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한 것이 불과 보름 전으로 이제서야 가닥을 잡고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우리 경제가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구조적·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과거의 성장방정식에서 벗어나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 소득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혁신 성장, 공정 경제 등 네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춰 향후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자마자 재원 논란에 휩싸였고, 이는 증세 불가피론으로 커지면서 당청의 주도하에 부자증세로 상황이 급변했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 경제정책의 구체적 수립과 운용을 책임져야 할 컨트롤타워로 기획재정부의 수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의 취임 때 ‘명목세와 세율인상은 없다’고 단언한 것이 공염불이 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결국 여당과 청와대의 소득세·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과정에서 존재감이 흔들리고 심하게는 ‘김동연 패싱(건너뛰기)’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 되면서 신뢰를 잃은 기재부가 풀어야 할 짐은 더 커진 형국이다.
김 부총리는 당청의 기조에 따라 자신의 발언을 뒤집으면서 소득세·법인세 인상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도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경제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주고 예측 가능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원칙을 스스로 지키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는 시장과 국민들께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경제팀과 함께 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김 부총리는 이날 “명목세율 인상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고 경제수장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려 했다”며 “그간 청문회 때부터 국정자문위와 조세감면 등 충분히 노력한 후 후순위로 세율을 인상하자는 논의로 궤를 맞춰왔었고, 증세를 포함한 다양한 방향에 대해서 전부 검토를 한 후 입장을 밝혔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부총리의 말대로라면 국정자문위와 경제정책 틀을 논의했고 경제팀인 기재부에서도 검토한 결과 선 조세감면 후 세율인상이라는 정책기조가 나왔다는 것인데, 불과 일주일 사이 당청의 무게에 밀려 경제정책 이행의 근간이 되는 세법을 수정했다는 결론이다.
또한 부동산 투기시장을 잡겠다며 발표한 8.2 부동산대책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정책에 관련해서는 찬반 논리가 비등하고 범위와 해석을 두고 학자들마다의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으로 당분간 지켜보자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례적·총괄적으로 기재부 주도로 발표해왔던 부동산 대책을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직접 나서 발표한 후 김수현 사회수석이 나서 청와대 발 후속 브리핑까지 전달하자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구설까지 오르내리며 기재부의 역할론이 다시 고개 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이었던 공공기관 신규채용이 상반기 목표 미달로 확인되면서 “취업 선호도가 높은 양질의 공공기관 일자리를 올해 상반기에 조기 확대해 청년실업 해소에 기여하겠다”고 했던 기재부의 올해 초 업무계획도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상반기 채용 실적은 목표보다 6.9%p 적은 49.0%에 그치면서 일각에서는 “일자리를 선제공급 하겠다고 홍보하고서 오히려 예년보다 공급을 감축하며 '역주행'한 모양새가 됐다”는 비판이 가해졌다. 목표대로라면 하반기 공공기관 신규 일자리 확보가 대규모로 이뤄져야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게다가 정부는 공공부문 추가 일자리 방침과 일자리 나누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총인건비 범위 안에서 정원을 증원하는 결정을 기재부와 협의하지 않고도 기관 자율로 내릴 수 있는 '탄력정원제'도 도입하기로 해 공공일자리 확보를 두고 일대결전을 앞둔 모양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마음이 바빠진 김 부총리도 SNS를 통해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나서는 등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김 부총리는 ‘유쾌한 반란을 꿈꾸는 김동연입니다’라는 페이스북 개설에 이어 직접 운영을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기재부는 다음달 1일 내년도 본예산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본예산 편성이라는 점에서 현재 여름휴가 중인 김 부총리가 관련 보고를 챙기는 있다.
증세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기재부가 증세에 우선해 정부의 재정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아 내년도 예산 편성과정에서 재량지출 10% 구조조정이 미진한 정부기관에 대해 예산안을 다시 제출할 것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지키지 못한 부처에 대해서는 운영경비 삭감 등 ‘페널티’를 주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올해는 재량지출 10% 구조조정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한다는 방침으로, 불필요한 재량지출 감축 없이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세출 구조조정이 이번엔 국회를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물밀듯 밀려들 정치권과 지방정부에서의 예산 증액 요구를 넘어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설득시킬 수 있을지, 예산 정국에서 기재부의 제자리 찾기가 눈여겨지는 대목이다.
소득 증대와 복지 확대라는 정부의 정책기조에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는 있지만 문제는 재원의 운용이다.
말 그대로 부자들 돈을 더 걷어 복지에 쓰는 방안 등 실효성을 따지기보다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머물러 있거나 체질개선이 아닌 단기적이고 일방적인 정책추진 의지로 밀어붙이기 식 집행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김 부총리의 언급대로 신중하고 좀 더 세련된 정책논리가 필요한 순간이다. 정교하고 유연성 있게 경제정책 안에 담긴 문제의식을 제대로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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