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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운전자' 文대통령…승객들 왜 하차했나


입력 2018.12.21 01:00 수정 2018.12.21 06:02        이배운 기자

제재완화·남북경협 과속으로 ‘중재자’ 신뢰 잃어

연내답방 무산, 한국에 기대 버렸나…“진퇴양난 자초”

제재완화·남북경협 과속으로 ‘중재자’ 신뢰 잃어
연내답방 무산, 한국에 기대 버렸나…“진퇴양난 자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평양에서 대집단체조와 '빛나는 조국' 공연을 관람한 뒤 평양시민들 앞에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국면에서 적극적인 중재 역할로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웠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을 발판으로 성사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운전자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북미대화 교착상태가 반년가량 지속 되면서 정부의 중재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상호 불신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정부는 균형 잡힌 중재를 통해 양방의 오해를 줄여나가야 했지만, 북측에 편향적 태도를 잇따라 보이면서 ‘중재자’로서의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제사회가 북미 핵협상에서 한국의 중재역할에 기대를 걸지 않게된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됐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지난 10월 ‘文정권은 북한 대변인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북미 정상의 중재역을 자처한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후견인 역할에 더 쏠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 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회의론자들을 겨냥해 북한이 진정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려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려 한다”고 꼬집었다. 중재외교를 표방한 우리 정부의 기대밖 행동에 적지않은 섭섭함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유럽을 순방하면서 각국 정상들에게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일부 정상들은 면전에서 거부의사를 밝혔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VID)’와 주민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하면서 오히려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한미가 남북 협력사업을 조율하겠다며 설치한 ‘워킹그룹’도 실질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비핵화 공조를 불신하게 되면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감시’하기위해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잇따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말 “워킹그룹은 한미가 상의없는 단독행동을 하지 않게 할 것이다"며 비핵화가 남북관계 진전 속도에 뒤처지지 않길 원한다”고 '남북 과속’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가능성이 열려있다”며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던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답방이 사실상 무산된 것은 북측이 우리 정부의 중재역할에 기대를 저버린 탓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남한과 긴밀 접촉을 해도 국면전환을 꾀할 수 없다고 보고 미국과 직접 대화를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9일 열린 ‘아산 국제정세전망 기자간담회’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 이후로 정부의 중재외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유일한 지렛대인 대북제재 완화를 우리 정부가 먼저 언급하고 영변 핵시설 ‘참관’을 ‘검증’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다.

신 연구위원은 “미국은 이제 한국이 북한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 지렛대를 약화 시킨 꼴이다”고 지적하며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쓴소리를 할 땐 쓴소리를 하고, 미국에는 지금부터라도 중재 역할에 대한 신뢰를 주기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정부가 한반도 운전자론, 중재외교를 표방하며 비핵화를 주도하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북한이 의지가 불명확하고 요지부동으로 나오면 아무소용이 없는 것”이라며 “북한은 일방적으로 요구의 목소리를 높이고 미국도 미국대로 요구를 높이면서 진퇴양난에 처했다”고 꼬집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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