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해자" 2019년 "진정한 친구" 올해는 "미래지향적 관계"
수출 규제 갈등 회복 전 코로나19 터지면서 '방역 협력' 의식한 듯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일(對日) 메시지의 수위가 낮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악화된 양국 관계를 고려했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문 대통령은 1일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열린 '제101주년 3·1 기념식'에서 일본에 대해 "일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며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침략행위에 무력으로 맞섰지만, 일본에 대한 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동양평화를 이루자는 것이 본뜻임을 분명히 밝혔다. 3·1 독립운동의 정신도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과거를 잊지 않되,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이라며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는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와 비교하면 수위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2018년 3월 1일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 정부의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당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2015년 한일 합의에 반하는 것이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문 대통령이 강경한 대일 메시지를 쏟아낸 건 취임 후 처음으로 맞는 3·1절인데다, 과거사 해결과 한반도 평화 구축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 표명의 필요성이 반영됐다고 분석됐다.
하지만 그 다음 해인 2019년 3·1절에는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 초계기 갈등 등으로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되자 예년보다 수위가 낮아진 메시지로 관계를 개선하려 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없다" "힘을 모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 등의 발언에서 그러한 의지가 묻어난다는 것이다.
올해 기념사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주안점을 뒀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초치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코로나19 사태도 한몫했을 거란 해석이다. 일본과의 경제적 문제로 갈등을 지속하기보단 방역 협력이 더 시급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읽힌다. 앞서 지난달 1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양국 간 정보 공유 등에는 협력의 뜻을 모은 바 있다.
다만 코로나19를 제외한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양국의 기본 입장이 유지되고 있어 문 대통령의 제안에도 조속한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월 6일 기자회견에서 "수출 당국 간 대화가 있었지만 우리가 바라는 7월 1일 (일본의 수출 규제 시점) 이전으로 돌아간 건 분명히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