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채권펀드 13거래일 8조 순유출...MMF 설정액 3개월 만에 120조↓
“불안심리 완화됐지만 경기악화 우려 여전...2차 추경에 수급 우려 지속”
한국은행이 한국판 양적완화 등 이례적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채권형펀드의 자금이탈을 막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한은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한 ‘무제한 돈 풀기’ 등으로 투자심리가 회복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다. 전문가들은 정책 대응에 따라 채권시장도 다소 안정을 회복했지만 당분간 변동성 장세에 대한 투자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채권형 펀드 시장에서는 1764억원이 순유츨됐다. 13거래일 연속 순유출이 이어지며 이 기간 동안 7조5795억원이 빠져나갔다.채권형 펀드는 국공채나 회사채에 투자해서 채권 이자 수익과 매매 차익을 얻는 상품이다.
단기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에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에서는 4341억원이 순유출됐다. MMF 설정액은 지난 1월 3일 113조원대를 찍은 후 처음으로 120조원 아래로 떨어져 119조6426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 시장은 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유가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잇따라 경제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한은은 채권시장안정펀드 가동과 함께 RP 매입을 통한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개시했다. 이어 한은 총재의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검토 소식까지 전해지며 지난 3일 그동안 상승했던 CP금리는 13일 만에 하락했다.
채권시장은 중단기금리는 하락하고 장기 금리는 상승하는 등 정책 기대와 수급 부담이 차별화된 움직임을 보였다. 2차 추경 우려와 정책 지원에 따른 채권발행 증가 등 수급 경계감이 계속된 반면, 당국의 유동성 공급 확대 등으로 시장의 불안심리는 완화된 영향이다. 다만 경기 악화와 기업실적 우려로 회사채와 여전채 금리가 상대적인 약세를 보이며 신용스프레드 확대 추세는 지속됐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여전히 높다”면서 “국내의 경우 일부 크레딧 시장의 위축도 문제지만 수급 부담 등에 따른 국채금리의 안정도 추가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 연구원은 “가시적인 신용경색 우려를 확인하기까지 채권시장의 변동성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날 30일 정부는 2차 추경이 포함된 긴급재난지원금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총 소요 재원은 9조 1000억원으로, 세출 구조조정으로는 재원 조달의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미 1차 추경 이후 올해 국고채 순증액은 81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2배에 달하며 1차 추경이 반영되는 2분기부터 월평균 국고채 발행량도 41.2% 가량 증가할 예정이다.
채권시장에서의 국고채 선호도가 높다고 해도, 이러한 증가는 공급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지나 연구원은 “지난 9월 이후 주택저당증권(MBS)과 2020년 확장적 예산안에 따른 우려로 금리가 급등했고, 1월 이후 입찰 때마다 장 중 금리가 약했던 것을 감안하면 4월부터 늘어나는 국고채 발행은 금리 상승 압력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 연구원은 “물론 금리가 하향 안정화되는 시점이 도래하겠지만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안정되지 않고 유가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상존하는 한, 국내 금리의 하향 안정화는 단기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또 전문가들은 정책 당국의 행보에 비해 시중금리 안정 국면이 더디다는 측면에서 채권시장이 안정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공동락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당국이 다른 중앙은행들에 비해 시장금리 안정에 대한 의지 확인이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은 양적완화라는 강력한 헤드라인에 비해 시장 참가자들이 느끼는 온도차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겠다는 정책 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2차 추경 등 적극적인 재정에 대한 언급 그 자체로 채권시장의 수급 우려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9일 예정된 한은 금통위에선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입을 모았다. 당장은 채안펀드의 채권 매입과 RP 매입 등 최근 시행되기 시작한 정책 진행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명실 키움증권 연구원은 “향후 1년간 한은의 기준금리 상향 조정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면서 “장기적으로 국고채 중심 비중확대는 유효하지만 단기적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이미 큰 폭으로 단행됐고, 통화당국이 그 효과를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당장 포트폴리오 듀레이션(투자자금의 평균회수기간) 확대 전략은 위험성이 커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