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계부채비율 190.7%로 전년대비 5.5%P 증가 "위험수위"
코로나에 대출문턱 낮아졌는데…1600조원 가계부채 '부실 뇌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가계대출 증가세가 코로나19 여파로 낮아진 대출창구 문턱을 타고 다시 높아지며 금융권은 물론 경제 전반에 부실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부채 잔액은 1611조3000억원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말 이후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전분기 대비 11조원 증가했고,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71조4000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가정에서 은행이나 보험사 등 금융기관에서 받은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사용액(판매신용)을 합한 금액이다.
특히 가계대출 부실 여부를 말해주는 지표인 연체율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5월말 기준 신한·국민·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 대출 연체율은 전달보다 0.02%포인트씩 상승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16∼0.32%에서 0.17∼0.33%로 각각 0∼0.02%포인트 올랐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부채가 위험에 노출된 상황인 것이다. 향후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시행한 대출 만기연장·상환 유예 등 금융지원이 끝나면 가려져 있던 부실이 드러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가 경제위기로 확산될지 여부는 부채상환 능력에 달려있는데, 신용도가 좋은 1금융권인 은행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위험하다는 신호"라며 "가계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의 부실 채권이 늘어나 금융권 기반이 흔들리고, 이는 경제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돼 위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도 지난해 처음으로 190%를 넘어섰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잠정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가계부채비율은 190.7%로 전년도 보다 5.5%포인트 증가했다. 즉, 연간 가계소득이 100만원인데 갚아야할 빚은 190만원이라는 의미다. 이 비율이 높아질수록 부채를 갚을 능력이 떨어져 가계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가계부채 상환 능력을 키우기 위한 '모범답안'인 가계소득증가와 일자리 창출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실업자 수는 127만8000명에 달해 5월 기준으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4.5%로 사상 최대였다. 또 한국의 고령인구 비중은 2019년 14.9%에서 2067년 46.5%까지 커지고, 2045년이면 전 세계에서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된다고 통계청은 분석했다. 돈을 벌 사람도 줄어들고 일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워지면, 가계부채 상환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반면교사로 정부가 자주 거론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악화했던 주요 경제지표가 성장률 회복과 함께 1여년만에 회복했지만, 이번엔 실업률 증가와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으로 경제를 회생시킬 동력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현재 가계부채 규모는 2008년(723조5000억원) 보다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향후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면 소비부진에 따른 산업생산 저하 등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더욱이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코로나19 사태로 대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내놓은 2019년 말 기준 43개국 민간부문 신용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증가폭이 43개국 중 4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수준인 0.5%로 인하하면서 대출창구 문턱은 더욱 낮아지게 됐다. '불붙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엔 쉽지 않은 금융환경이다.
금융당국 입장에선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소비활성화와 가계대출 관리 사이에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대출 증가를 막는 게 중요한 것이냐, 어려운 가계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냐'는 고민에서 '살리고 보자'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은 위원장은 "최근의 기업대출 증가, 일괄 만기 연장 등과 관련해 현재의 부실을 미래로 이연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면서 "가계부채 관리와 관련해 2~3년 시계 하에 연도별 목표구간을 설정하는 새로운 관리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올해 가계부채 상승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로 상환능력이 악화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주체별 부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경우 민간의 과도한 부채 수준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 위기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이 재정위기를 초래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경원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내수위축과 수출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인하로 이자부담이 줄어들면서 가계의 대출은 한동안 더 늘어날 전망"이라며 "대출이자 부담은 줄지만 동시에 대출 역시 더 빠르게 증가하게 된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될수록 '빚을 통해 빚을 갚는 구조'가 정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