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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된 사망보험…보험사도 소비자도 '부담'


입력 2020.06.18 06:00 수정 2020.06.18 09:18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평균 손해율 87.1%로 1년 새 6.4%P 올라…4년여 만에 최고

저금리로 위기 속 수익성 발목 '이중고'…고객 수요도 '시들'

사망보험 손해율 상위 10개 생명보험사.ⓒ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사망보험 손해율이 4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예상보다 사망보험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불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저금리로 위기에 처한 생보사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되고 있다. 아울러 고객 입장에서도 비싼 보험료를 내 가며 사망 이후 보장을 받기 보다는 살아있을 때 현실적인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요구가 커지면서, 한 때 생명보험업계의 상징과 같은 상품이었던 사망보험은 이래저래 애물단지로 전락해 가는 모습이다.


18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23개 생보사들의 사망보험 위험손해율은 평균 86.9%로 1년 전(80.7%)보다 6.2%포인트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생보사들이 지급한 사망보험금을 위험보험료로 나눈 값으로, 보험사가 예상하고 있었던 사망보험금과 비교해 실제로 나간 보험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이 같은 생보업계의 사망보험 위험손해율은 분기 기준으로 2016년 말(87.5%) 이후 13분기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그 만큼 사망보험을 둘러싼 생보사들의 수익성이 근래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화됐다는 얘기다.


일부 중소형 생보사들은 사망보험 실적이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과 DGB생명, AIA생명의 사망보험 위험손해율은 각각 126.3%, 109.9%, 101.4%에 달했다. 위험손해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보험사의 예측보다 빠져나간 보험금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아울러 KDB생명(99.4%)과 푸본현대생명(96.7%), 신한생명(95.0%), ABL생명(92.0%), 미래에셋생명(91.3%), 흥국생명(90.5%) 등의 사망보험 위험손해율 역시 90%를 넘어섰다.


대형 생보사들의 상황도 예전보다 나빠지긴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생보사인 삼성생명의 사망보험 위험손해율은 같은 기간 84.2%에서 88.9%로 4.7%포인트 상승했다. 한화생명 역시 83.1%에서 89.3%로, 교보생명도 80.1%에서 82.1%로 각각 6.2%포인트와 2.0%포인트씩 해당 비율이 높아졌다.


이처럼 악화되는 사망보험 손해율은 생보사들의 수익성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불의의 사고나 재해 등에 따른 피해를 보상해주는 손해보험과 달리, 사망 보장은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 필연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이란 점에서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장기적인 부담은 계속 누적돼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미래에 내줘야 할 보험금에 대비해 쌓아야 하는 적립금은 보험사에게 크나큰 압박이 되고 있다. 더욱이 시행이 다가오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은 이 같은 고민을 한층 키우는 대목이다. 2023년 IFRS17이 적용되면 기존 원가 기준인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뀐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보험사들이 최근 자본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이런 와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역풍으로 갑작스레 제로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보험사들의 위기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잘 굴려 훗날 다시 돌려줘야하는 보험 사업의 구조를 감안하면, 낮아진 금리는 투자 수익률을 악화시키며 보험사의 수익성을 바닥부터 갉아먹는 악재다. 아울러 IFRS17 적용을 앞두고 시장 금리가 낮아질수록 과거 고금리 시절 판매된 상품들에 대한 적립금 부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로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지난 3월 기준금리를 기존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했다. 우리 금융 시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제로금리 시대다. 그럼에도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은은 지난 달 기준금리를 추가로 0.25%포인트 내린 0.50%로 결정했다.


고객들로서도 사망보험은 예전만큼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품이 됐다. 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가운데 기대수명이 크게 높아지면서, 사망 후의 보장보다는 당장 생활 속 위험을 책임질 수 있는 보험 상품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어서다. 또 가뜩이나 지갑 사정이 나빠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보험료도 고객들이 사망보험을 외면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다.


실제로 생보업계가 사망보험에서 거둔 초회보험료는 지난해 9989억원으로 전년(1조1107억원) 대비 1.2%(128억원) 감소했다. 불과 4년 전 2조272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 수준으로 쪼그라든 규모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고 처음 납입하는 보험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성장성 지표로 활용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사망보험 보장을 찾는 이들이 줄면서 생보사들은 사망보험금을 연금처럼 미리 당겨쓸 수 있는 신종 상품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IFRS17에 따른 부담으로 인해 공급 측면에서의 사망보험 수요도 위축되면서 장기적으로 관련 시장 축소 흐름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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