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금융당국마저 시녀로 만들어…정치적 입김 속 혁신금융은 불가능"
포퓰리즘 과잉 우려…금융당국 고위관계자 "취지 이해하나 많이 나갔다"
관제펀드 추진부터 대출금리 상한선 제한까지 금융권을 향한 정치권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시장논리에 맡겨야할 금융시장에 정치권이 '감놔라 배놔라'할수록 우리 금융 수준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심을 잡아야할 금융당국마저 정치권에 휘둘리며 고질적인 병폐였던 관치금융이 정치금융으로 퇴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업계에 미치는 파장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정치금융의 팽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금융권에선 그간 고질적인 병폐였던 관치금융이 최근 들어 정치금융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인들이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한 정책을 내놔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다", "정치권의 무관심이 금융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최선의 길"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연 3%대 수익률을 내건 원금보장(추구) '뉴딜펀드'와 '연 10% 이자제한법' 추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품이고 정책이었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을 겨냥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은 금융감독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고 정치금융이라는 문제를 던진 상징적 사건이었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의 당면 과제로 '정치금융 탈출'을 꼽았다. 금융권이 시장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핀테크, 디지털금융 등 혁신에 나서고 있지만, 그에 앞서 정치권의 외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정치금융이 팽배한 시대에는 혁신은 꿈꿀 수 없고, 정치권 눈치만 보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금융사는 물론 학계에서도 정치금융에서 독립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권 인사인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관치금융은 과거보다 덜하게 된 대신 그 자리에 정치금융의 그림자가 보인다. 물론 관치금융보다 정치금융이 더 나쁘다"고 지적했고,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한국 금융을 얘기할 때 관료들이 금융기관을 흔드는 관치금융이 문제라고 얘기해왔는데 지금 더 중요한 건 정치금융의 팽배"라고 꼬집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와대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정치의 시녀로 만들고 있는데, 제도적으로 이를 어떻게 견제할 건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최근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금융감독의 정치화가 되는 것 같다. 진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혼란…시장과 싸우는 것만큼 하책 없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관치는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많이 빠졌다. 대신 정치는 선거 때마다 종종 목소리를 냈는데, 요즘은 상시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면서 "정치권에서 정책을 주시면 충분히 고려하겠지만, 그간 경험에 비춰보면 최근에는 무리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뉴딜펀드'와 '대부업 법정 최고금리 연10% 제한'을 거론하면서 "취지는 이해하지만, 많이 나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이 정치권의 바람에 휘둘리는 배경을 '주인 없는 회사'의 태생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이 많게는 수백조원 자산을 굴리며 시장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재벌과 달리 지분이 분산된 구조이다 보니 정치외풍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권의 입맛에 따라 내놓는 금융상품의 성질이 달라지고 정부 정책에 동원되기도 한다. 이에 금융권 인사들은 "주인 없는 회사라지만 금융정책이 정치논리에 따라다녀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정제된 표현으로 금융정책을 내야 한다"면서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정책신뢰를 잃게 하는 나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정책이 하루아침에 만들었다가 없어지는 게 아닌데, 시장과 싸우는 것만큼 하책(下策)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재명 지사의 대부업 금리 10%인하 주장에 대해 "다른 대선주자가 대부업 금리를 7%로 낮추자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현재 정부의 햇살론 금리도 17%인데,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선 자칫 정치권 주도하는 정책에 잘못 뛰어들었다가 청문회장에 불러나가거나 막대한 손실로 금융소비자들의 원망을 사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업계에선 금융업무능력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정치권 이슈에 적당히 장단에 맞추는 기술'을 꼽을 정도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뉴딜펀드 구상을 발표한 '30년 증권맨'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겨냥해 "정치인들이 금융을 모르고 정책을 펴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해도 명색이 증권사 사장까지 지낸 정치인이 저런 주장을 펼 수 있는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사들은 '어떻게 하면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지', '언제 바람이 잦아들지' 고민하고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