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또 관객들을 도발했다. “너희는 반드시 n차 관람을 하게 될 거야”라는 자신감을 깐 ‘테넷’(TENET)을 통해서다.
변칙 개봉 논란에도 ‘테넷’은 26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22일과 23일 유료 시사회를 통해 8만 4000여명의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재확산으로 극장을 가득 채우지는 못했지만, 미리 영화를 본 관객들은 놀란 감독의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해석을 낳기 시작했다.
‘테넷’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이란 기술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당이 있다. 주인공은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가진 조직·동료들과 함께 이 악당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것을 막아야 한다’가 전부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자주 접한 관객이라면 이 세 줄만으로도 영화가 어떻게 흘러, 어떤 결말을 맺을지 '스토리'는 예상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이 세 줄을 150분 영상으로 엮어낸 이가 하필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를 만들어낸 놀란 감독이다. 그간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시간’을 가지고 놀라운 상상력을 얼마만큼 펼칠 수 있는지 보여준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시간’을 쥐락펴락하면서 관객들에게 과제를 던졌다.
영화에서 놀란 감독은 ‘시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라는 시간의 일방향성 가설을 뒤틀어본다. 시간의 방향을 되돌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인버전’이란 개념이 나오고, 이는 영화의 큰 줄기를 차지한다. 때문에 여러 물리학 이야기가 나오고, 이를 스크린에서 화려하게 구현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점점 난해해 진다. 눈은 화면을 따라가는데, 머리는 멈칫거리며 ‘해석 정지’ 상황을 여러 번 맞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극중 조직의 연구원이 주인공인 작전의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 분)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라”. 이 대사가 나오는 타이밍에서 관객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영화를 봐야할지를 선택해야 하고, 이는 여러 부류를 나뉘게 되는 상황이 된다.
저 대사대로 이해하지 알고 그냥 느끼는 관객, 굳이 이해하려 노력하는 관객,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n차 관람을 위해 영화를 분해하는 관객 등으로 말이다.
영화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즐기는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속 대사나 장면이 주는 의미 따위에 굳이 무게를 두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보면 ‘테넷’은 아주 잘 만들어진 액션 스파이물이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인 오페라 극장에서의 액션부터 남다르다. 이후 도로 위 장면은 물론, 금고 보관장소에서의 액션, 마지막 전투 장면까지 150분간 한바탕 액션물을 즐기면 된다. 놀란 감독이 20년 동안 아이디어를 개발해, 6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야기, 보잉 747 비행기를 충돌 폭발 장면이 CG가 아닌 놀란 감독이 실제 구입해 진행한 촬영이라는 이야기 등의 소소한 정보까지 알아두면 영화를 즐기는데 작은 도움은 된다.
굳이 이해하려 노력하는 관객은 리뷰 등의 정보를 충분히 섭렵하고 가길 권한다. ‘엔트로피’ ‘인버전’ ‘할아버지의 역설’ 등의 정보는 물론 일부 유튜버들은 물리학 공식을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물론 큰 도움은 안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내용의 스피디함을 따라가진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눈은 따라가는데, 머리에서 이를 처리하는 속도가 뒤엉키는 상황이 벌어진다.
n차 관람을 처음부터 염두에 둔 사람들은 일단 두 번 정도 보게 되면 어느 정도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여기에 시각적으로 뿐 아니라, 머릿속에서 영화 속 내용을 받아들이는 속도 역시 빨라진다. 그러면서 나름의 영화 해석을 위한 내용 정리도 이뤄진다. 첫 번째 관람 당시 불친절한 감독의 연출이, 두 번째 관람 때는 퍼즐 게임처럼 느껴지게 된다.
어떻게 보든 ‘인버전’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시간 이동에 무게를 두길 권한다. 영화에서도 종종 언급되지만, 영화 속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즉 이런 상황이면 인물들도 동일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기억을 공유한 하나의 인물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자신 혹은 타인을 만나고 헤어지고 연결되는 과정을 전제하면, 영화는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즉, 영화 속 배우들인 존 데이비드 워싱턴, 로버트 패틴슨, 엘리자베스 데비키가 꼭 동일 시간대, 한 인물만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24일과 25일은 유료 시사회를 본 관객들과 평론가, 기자 등 영화계 관계자들의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26일 정식 개봉 후에는 폭발적으로 토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변수다. ‘거리두기 3단계’로 가면 관객들은 ‘테넷’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