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D:방송 뷰] 비혼 외친 '그놈이 그놈이다','멜로'만 남기다


입력 2020.09.02 07:42 수정 2020.09.02 07:4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황정음, 윤현민ⓒKBS2

비혼을 주제로 젊은 여성들의 현실을 그리겠다고 호언장담한 KBS2 월화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가 결국 '기승전 멜로'로 마무리 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이 선언하는 '비혼'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로맨틱 코미디에 녹이려 했지만, 고민 없는 전개와 설정으로, 드라마가 갖는 존재감과 차별점 모두 놓친 것이다.


'그놈이 그놈이다'는 한 여자가 어느 날 상반된 매력의 두 남자로부터 직진 대시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비혼 사수 로맨틱 코미디다. 서현주(황정음 분)는 세 번의 전생을 통해 사랑에 실패하며 비혼을 선언한 인물이다.


'그놈이 그놈이다'는 첫 회에서 서현주의 비혼식 장면을 통해 로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듯 했다. 극중 서현주는 "내가 믿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내 반려자는 서현주 나 자신이다. 커리어 쌓기도 전에 경단녀가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결혼을 생각할수록 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생각났다. 나는 결혼에 맞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남편 말고 내 자신에게 외조하고 싶다. 자식 말고 내 꿈을 키우고 싶다. 연애는 내 자신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장면은 과거 결혼이란 선택지 밖에 없었던 30대 여성이 '노처녀'가 아닌 당당히 '비혼'을 선택하고, 왜 비혼을 선택했는지를 압축해 설명했다.


하지만 극이 흘러갈 수록 전생에 세 번 인연을 맺었던 황지우(윤현민 분)와 얽히고, 친동생처럼 함께 자란 박도겸(서지훈 분)이 서현주에게 애정을 느끼며 삼각관계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여기에 과거 조선시대, 일제시대, 1970년대를 거쳐 사랑과 이별을 했던 서현주와 황지우의 인연, 황지우를 짝사랑한 김선희(최명길 분)의 악행까지 꼬인 타래를 풀기 바빴다.


전생의 인연과 삼각관계 멜로라인이 짙어질 수록 첫 회에 서현주가 비혼식에서 선언한 말들은 무색해졌다. 비혼이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또 다른 선택지가 아닌, 전생에 세 번의 사랑을 실패한 상처 탓에 비혼을 택한 서현주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서현주의 말과 행동은 주체적인 여성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이같은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한 남자 때문이라는 흐름으로 변질하면서 '그놈이 그놈이다'가 보여주려 했던 의도와는 상충됐다.


이외에도 '그놈이 그놈이다'는 비혼 외 미혼과 기혼 설정의 서현주 친구들을 통해 다양한 여성들의 생각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미혼과 기혼 여성의 고충은 로맨스와 전생을 다루기 바빠 뒤로 밀려났다.


'그놈이 그놈이다' 마지막 회에서는 첫 회의 강렬했던 비혼식을 다시 한 번 등장시켰다. 대신 한 사람이 아닌 서현주와 황지우의 비혼식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으로 하나가 되는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에서 성실히 살아가겠다. 지금 잡은 손 놓지 않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선언했다. 캐릭터들의 입을 통해 비혼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혼식의 이름을 비혼식이라고 바꾼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취업난, 육아 후 경력 단절, 높은 집값, 가부장 제도의 결혼 등 사회 속 문제가 만들어낸 비혼주의를 로맨스로 가기 위한 빌드업으로 밖에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주인공과 손을 잡고 미래의 행복을 그리는 여주인공은 지금까지 숱한 로맨틱 드라마에서 봐왔다. 시청자들이 '그놈이 그놈이다'에 기대한 건 비혼주의 설정에 알맞게 온전히 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지만, 사랑을 함으로 세상을 다 가진 여주인공의 표정과 뻔한 로맨틱 코미디만 남게 됐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