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리스크 관리강화 명목이라지만 '옥상옥 규제' 지적 잇따라
금융사 "코로나19 여파에 힘겨운 시기인데 금융산업 위축될 것"
정부여당이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금융그룹감독법)을 비롯한 규제입법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금융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당은 이른바 '기업규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함께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겠다며 금융산업 옥죄기에 나선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국회에 금융그룹감독법을 제출했고, 법안은 정무위원회에 회부됐다. 이 법안은 여·수신, 보험, 투자 중 2개 이상 업종의 금융회사를 운영하는 자산 5조원 이상 금융그룹을 관리 감독하는 것이 골자다.
여당의 국회 의석 5분의 3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금융권의 우려 목소리와 무관하게 관련 법안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그룹감독법이 통과되면 당장 금융사와 산업 계열사를 모두 보유한 그룹들은 사실상 이중 규제를 받게 돼 경영에 부담 커질 수밖에 없다. 교보·미래에셋·삼성·한화·현대차·DB 등 6개 금융그룹이 대상이 된다.
금융권에선 사전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옥상옥' 규제인데다가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제약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보험사가 계열사 지분을 총자산의 3%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보험업법',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10%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등 규제 장치는 금융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에선 통합감독법의 직접적 규제 내용 보다 기업에 대한 사전적 규제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일부 기업은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 등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동안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폐기되길 반복했지만, 이번엔 정부여당이 단독 법안 처리가 가능한 과반 의석을 지렛대삼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추진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자 여당의 총선 공약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감사에서도 치열한 정치공방 이슈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금융그룹통합감독은 기업을 국가가 지배하겠다는 사회주의적 경제노선의 산물이자 시대 퇴행적 시도"라며 관련 법안 추진에 반발하고 있다.
다만 여당도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인한 실물경제위기 속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기업규제 법안을 처리하긴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대 국회에서도 '기업 옥죄기'라는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여당이 당 차원의 중점 처리법안 목록에서 제외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무위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시기에 시행하기 부적절하다"며 "시기라도 조절해 금융시장의 어려움을 줄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 교수는 "금융그룹에 대한 위험관리는 지주회사제도를 보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그룹 총자산 5조원 이상이라는 감독 대상 근거 역시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과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