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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의 금융노트] "OO은행 들어오라 하세요"…금융권에 재갈


입력 2020.10.05 07:00 수정 2020.10.04 19:10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뉴딜펀드 비판 보고서 삭제 논란 결국 국정감사 무대까지 올라

'관치펀드'지적 직시 못하고 시장자율성 훼손 "금융권 침묵강요"

금융권을 향한 '정치금융 팽창'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자료사진)ⓒ데일리안


"카카오 들어오라 하세요."


최근 여당 의원이 포털사이트 뉴스 편집에 압력을 행사할 것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정치권력의 횡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야당 원내대표 연설이 포털사이트 '다음' 메인뉴스에 선정되자 IT기업을 관장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이 민간기업에 대한 군기잡기에 나선 것이다.


금융권이라고 다를 게 없다. 담당인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부르면 금융지주사 회장이든 은행장이든 단숨에 달려가야 하는 '을'의 처지다. 더욱이 작은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현재 여권의 서슬퍼런 권력 앞에선 눈치를 보느라 시장논리를 제대로 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뉴딜펀드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금융사의 보고서가 갑자기 사라진 사건은 현재 금융권이 처한 어두운 단면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금융사 한 임원은 기자와 만나 "문제될 내용은 아니라고 보는데, 뉴딜펀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권의 분위기를 파악 못한 게 죄"라고 했다.


해당 금융사는 보고서를 작성한 애널리스트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직접 삭제했다고 주장했지만, 업계에선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상황이다. 해당 금융사 직원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에선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보고서 내용을 문제 삼았다는 내용 등이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 내용을 뜯어보면 뉴딜펀드 정책에 비판적으로 접근했다기 보단 정부 주도의 금융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을 거론하는 등 '무미건조한' 분석에 가까웠다. 보고서는 "금번 뉴딜펀드까지 그동안 매번 각종 정책들에 은행들이 활용되면서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은행 주주들의 피로감은 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 주도 뉴딜펀드에 은행이 동원되면 주주에게 직간접의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금융상식'을 서술한 것이다. 업계에선 "이게 문제될 내용인가",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쓴 수준인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금융권에선 독재시절처럼 금융이슈 보고서에도 정치적 검열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왔다. 이번 논란에 일부 금융사는 정책금융 관련 서술에 주의를 당부했고, 일부 금융사는 과거에 썼던 보고서 내용까지 확인하며 '문제될 부분'을 확인했다고 한다. 권력의 '군홧발'에 떨던 시절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금융사들이 정부정책에 객관적 분석을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 그간의 행태로 유추해보면 "OO은행 들어오세요"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적폐금융사'로 낙인찍히게 될 공산이 크다. 최근들어 금융권을 옥죄는 각종 규제입법에 재갈마저 물리면서 금융시장 경쟁력은 정치리스크에 휘말리고 있다.


금융시장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밀어붙인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은 과거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도 정권이 바뀐 뒤 흐지부지됐고 수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져 유명무실해졌다.


이제 금융시장의 객관적 분석조차 나오기 어려운 현재의 환경에서 뉴딜펀드가 갈피를 잡을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해졌다. 이 같은 분위기에 금융사 한 임원은 이렇게 되물었다. "정치의 성공 보다 정책의 성공이 우선 아닌가." 금융사 보고서에는 쓸 순 없지만 정부여당이 새겨들어야할 얘기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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