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테르', 11월 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공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오랜 꿈을 위해 기존에 하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에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배우 이강은 힘들게 합격한 대학교를 포기하고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결단의 무게는 매우 컸다.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스스로 짊어져야 할 숙제였기 때문이다. 이강은 쇼 뮤지컬 ‘펑키펑키’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18년차가 된 지금까지도 뮤지컬 배우로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의 결단이 단순한 ‘변심’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강은 8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진행되는 뮤지컬 ‘베르테르’에 출연 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공연계도 적잖은 타격을 입으면서 조기폐막, 공연 취소 사태를 직접 몸으로 경험해야 했지만, 이강은 무대에 대한 간절함을 ‘베르테르’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무대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한다”는 그는 집배원 역할로, 작품의 댄스캡틴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 원래는 무용학도였다고요.
네. 무용, 정말 열심히 했어요. 2002년 월드컵 경기를 무용학원에서 볼 정도로요(웃음). 대학교 1학년말에 연예기획사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그 당시에는 철없는 마음에 그냥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정말 많은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무용을 그만두고 기획사에 들어갔죠.
- 그중에서도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던 건가요?
뮤지컬 배우가 꿈은 아니었어요. 21살 때 기획사 연기선생님의 권유로 ‘펑키펑키’라는 뮤지컬 오디션을 봤는데 운 좋게도 합격해서 시작을 하게 됐어요. 그 당시에 뮤지컬 배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꿈같은 직업이었기에 오디션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죠. 그렇게 무대에 올랐고 하다 보니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싶더라고요. 하하.
-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나요. 너무 떨리고 설레고(웃음). 정말 열심히, 잘해야지 하면서 무대에 올랐는데 10초도 안 돼서 안무하다가 바지가 찢어졌어요. 아무렇지 않게 씬을 끝내고 내려오긴 했지만, 분장실 문 뒤에 숨어서 엄청 울었어요. 다시 생각해도 끔찍해요(웃음).
- 데뷔 당시와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겠죠?
네, 달라진 게 너무 많아요. 페이부터 결혼, 외모, 마음가짐까지. 하하. 가장 크게 달라진 한 가지를 꼽자면, 배우로서 무대에 임하는 마음가짐이죠. 데뷔 때는 무대에 오르는 것이 내 만족을 위함이었다면, 지금은 관객을 위한 무대가 된 거 같아요. 훨씬 더 소중한 공간이 됐어요.
- 오랜 기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슬럼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오디션 정말 많이 봤고, 정말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만큼 슬럼프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고요.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 더 열심히 했습니다. 실력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계속 레슨 받고 꾸준히 발전하다보면 극복하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그래왔고요. 그걸 포기하는 순간이 제 활동의 끝이 아닐까요?
- 많은 앙상블 배우들이 ‘투잡’ ‘쓰리잡’까지 해야 한다고들 하던데요.
꼭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사는 멋진 삶 인 것 같아요. 저도 20대 때는 공연 끝나고 11시부터 새벽5시까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바로 오전 10시 연습을 가고요. 그렇게 피곤하고 지칠 때도 무대 올라가는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는 그냥 열심히 살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었네요. 백화점, 목욕탕, 커피숍, 호프집, 일용직, 조경 등. 하하.
- 현재 참여하고 있는 뮤지컬 ‘베르테르’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무대화한 작품인 건 다 아실 것 같고요. 한 남자의 뜨겁고 순수했던 사랑, 현시대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해하기조차 힘든 사랑이야기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고 싶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차가워진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뜨겁고 순수한 사랑이야기. 뮤지컬 ‘베르테르’가 20년 동안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웃음)
- 벌써 시즌에 세 번째 참여하는 거라고요.
네, 2013년도와 2015년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네요. 처음에는 이 작품이 하고 싶다기 보단 조광화 연출, 구소영 음악감독, 노지현 안무감독, 이 세분 작품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당시 다른 오디션에 합격한 상태였는데도 바로 베르테르를 선택했죠. (웃음) 지금은 이 작품 자체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베르테르’를 오디션 공고가 올라온다고 하면 바로 지원을 했죠. 감사하게도 합격했고요. 하하.
- 이번 작품의 주연 자리를 두고 경연을 벌인 tvN ‘더블캐스팅’에도 출연했습니다.
아쉬움보다는 반성을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베르테르’ 오디션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제가 ‘베르테르’ 작품을 해봤기 때문에 일단 저는 베르테르과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미 욕심은 없었던 거죠. 저한테 베르테르는 정말 아무나 감히 할 수 없는 역할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경연에 나름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최선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다른 공연을 하고 있기도 했고, 새로운 작품 연습 중이여서 여유도 없었던 거 같아요. 부담도 됐어요. 그래도 결과적으로 ‘베르테르’ 공연에 함께 하고 있으니 참 좋네요(웃음).
- 집배원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캐릭터 소개 좀 해주세요.
집배원은 발하임 마을의 소식통이죠. 동네 이것저것 관심 많은 아저씨, 혹은 삼촌? 누구보다 카인즈를 귀여워하고 위하는 인물이기도해요. 오디션에 합격하자마자 집배원이 하고 싶어서 이미 지난 시즌 대사를 다 외웠고 나팔을 샀어요. 지난 시즌을 통해 집배원은 나팔을 불 줄 알아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동영상도 찾아보고 단기레슨도 받고 결국 집배원 역할을 따냈습니다. 하하.
- 다수의 대극장 뮤지컬에 출연해왔는데, ‘베르테르’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을까요?
‘베르테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이 가장 중요해요. 연출님께서 가장 중요히 생각하시는 것도 호흡이고요. 숨 쉬는 것부터 배우의 걸음걸이까지 다른 대극장 작품보다 좀 더 디테일한 연습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그래서 모든 배우가 살아 숨 쉬고 한 명 한 명 더 잘 보이죠. 다른 작품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고, ’베르테르‘가 조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 앙상블로서 작품에 출연할 때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앙상블은 여러 가지 캐릭터로 무대에 올라요. 그 인물의 분석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씬에 참여하고, 때로는 아무런 감정 없이 배경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씬의 이유를 찾고 무대에서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죠. 그 많은 씬들의 이유를 찾아내는 과정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갓상블’이라는 칭호까지 생겼잖아요. 많은 관객들이 배우 한 명 한 명 살아있음을 느껴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 뮤지컬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등 매체 연기도 함께 하고 계신데요. 평소에도 도전에 거침이 없는 성격이신가요?
장르를 떠나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항상 현재에 충실한 편이에요.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다보니 한 작품 한 작품 이렇게 오래 활동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 앞으로 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지금까지 모든 역할들이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앞으로도 어떤 역할이든 도전하고 성공하고 싶어요. 아! 정말 나쁜 역할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누가 봐도 나쁜, 아주 나쁜?(웃음)
- 기존에 했던 작품들 중 흥행 여부, 작품의 크기와 무관하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페셜 레터’라는 작품이에요. 제가 가장하고 싶었던 공연이기도 했고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없어진 작품이지만요(웃음). 정말 공연하는 매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공연계도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직접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 체감은 더 클 것 같습니다.
출연하고 있던 작품이 조기폐막하고, 예정되어 있던 작품이 취소가 되는 사태를 겪었어요. ‘베르테르’ 공연하기 전까지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것 같아요. 좌석 띄워 앉기. 환호성 금지 등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한 상황들이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지만, 무대에 서고 있는 하루 하루가 감사해요. 이 힘든 시기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찾아와 주시는 관객분들이 계시기에 저희가 버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매일매일 기도합니다.
-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도 궁금합니다.
믿고 보는 배우, 잘하는 배우,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과 사랑하는 우리가족에게 보답할 수 있는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