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참모 경고에도 코로나 평가절하
"바이러스가 재선에 무슨 상관인가"
바이든의 '소극적 유세', 오바마 참모까지 지적
'방역 대통령' 이미지로 '코로나 극복' 화두 던져
7일(현지시각) 미국 CNN방송 등 외신들은 각 주(州)별 개표결과를 바탕으로 제46대 미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승리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방송사 보도 직후 자택이 위치한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미국인들은 우리에게 명확한 승리(clear victory)를 안겨줬다"며 "이번 승리는 미국민을 위한 승리였다. 이제까지 대통령·부통령에게 주어진 표로는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금은 미국이 치유해야 할 시간"이라며 "분열시키지 않고 통합시키는 대통령이 되겠다. 나는 민주당 후보였지만 미국 대통령으로 통치할 것이다. 상대방을 적으로 대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승복에 따라 마무리되는 미 대선 특성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전이 변수로 남아있지만, 승자가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확진 후 지지율 격차 벌어져
"코로나 아니었다면 쉽게 재선했을 것"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은 상반된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 지지를 호소했지만, 무엇보다 180도 다른 코로나19 대응이 초접전 양상으로 치닫던 선거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코로나19가 재선의 유일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선거 참모의 보고를 받고도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This f***ing virus)가 내가 재선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일축했다고 전했다.
당시 코로나19의 파급력을 경고한 토니 파브리치오 트럼프 캠프 여론조사관은 79페이지짜리 메모 형식의 보고에서 "대중들이 POTUS(트럼프·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가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경제)과 집중해주길 바라는 것(코로나19와의 전투) 사이에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까지 경기회복 영향으로 재선이 유력했으나 코로나19의 미 본토 확산이 본격화됐던 지난 4월 이후 지지율이 크게 꺾였다. 지난 10월에는 자신의 확진 판정으로 격리 기간 동안 선거활동을 펴지 못하며 추격 동력을 상실했다.
완치 이후 격차를 크게 좁히긴 했지만, 코로나19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유권자에 큰 실망을 안겨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대선 관련 우선순위는 경제가 첫 번째"라며 "코로나는 세 번째였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아니었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주 쉽게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고 말했다. CNN이 대선 당일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 3분의 1이 경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으며 △인종 불평등 △코로나19 문제가 뒤를 이었다.
'지하실 조' 비판에도 방역에 방점
"우리가 처음으로 할 일은 코로나 통제"
바이든 당선인은 유세 초반 '지하실 조(Basement Joe)'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전이 본궤도에 오른 뒤로도 대규모 유세 대신 드라이브인 유세 등을 개최하며 '방역 대통령' 이미지를 쌓는 데 주력했다.
미 언론들은 현장 유세에 적극적이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대면 접촉을 자제하며 자택에 곧잘 머물던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 냉소적 반응을 쏟아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바이든 당선인 전략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꼽히는 데이비드 액슬로드와 데이비드 플로프는 뉴욕타임스(NYT)에 "바이든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 비행사처럼 원격으로 우리와 대화하면서 지하실에 빠져 있다"는 기명 논평까지 실었다.
개표 초반 트럼프 대통령의 압도적 우위가 나타나자 바이든 당선인의 '소극적 선거유세'는 또 한 번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우편투표 뒷심으로 모든 경합주에서 승리하자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전략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을철을 맞아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시작된 상황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보여준 '안정감'이 유권자 선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폴리티코는 바이든 당선인 측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코로나19 방역에 중점을 둬왔다며, 지난 여름께부턴 정권 이양 시 '신속한 위기관리'를 위한 모금활동도 벌여왔다고 전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 승리가 유력해진 지난 5일 인수위원회 홈페이지를 공개하고 코로나19 관련 태스크포스(TF) 구성 계획을 알리며 공개 모금에 나서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당선 연설에서도 코로나19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관련 전문가 그룹을 오는 9일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그룹은 내년 1월 대통령 취임 즉시 배포 할 수 있는 '행동 청사진(action blueprint)'을 마련할 방침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코로나19와 싸우지 않고선 경제를 회복할 수 없다"며 "우리의 과업은 코로나를 통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