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특성상 긴급잔업과 유연한 인력활용 필수
실질임금 평균20% ↓ 전망…인력이탈 가속화 우려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조선 협력사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모자란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까지 적용될 경우 조선 협력사들의 경영난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협력사들은 주 52시간 확대 도입을 유예하고 조선업 특성에 맞도록 관련 규정이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업 특성상 납기일 준수의 중요성, 인력 조달의 어려움, 장기 연속 공정의 필요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 전체 생산의 70%는 협력사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조업 특성상 근로자들은 평균 주 60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있다.
특히 조선소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작업이 야외에서 이뤄질 뿐만 아니라 중량물을 취급하는 특성 탓에 재난에 취약하다. 자연재난이나 산재사고로 사업장 전체 작업이 중지되는 경우가 빈번해 이에 대응한 잔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유동적인 물량, 신규선 수주 시 상세 설계도면의 부정확성, 선주 및 선급사의 요청 변경 등 작업 변수가 많아 근로시간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고, 유연한 인력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52시간제가 전격 도입되면 이런 산업 특수성에 관계없이 인력을 추가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이는 고스란히 협력사들의 부담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조선 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 주 52시간제로 근무시간을 단축하게 될 경우 근로자 실질임금이 평균 20% 가량 하락해 조선 기술인력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숙련인력이 충원돼야할 자리를 비숙련인력으로 대체 투입하면 교육비용이 발생하고 품질 저하가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 도 잇따른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선 산업은 납기일을 준수하지 못하면 천문학적인 페널티가 부과되고, 이는 조선사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들의 경영에도 상당한 타격이 된다"며 "자연재해 등 여러 불가피한 사정으로 작업이 지연되면 근로시간의 예외적 특례가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수중함 특수 직종인 무장, 음파탐지 분야 등 대체 불가능한 인력의 부재는 공정 중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는 신규 근로자 채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군 경력자를 구하는 것은 어려울 뿐더러 기량 향상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공정이나 직무에 따라 근로시간 준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일례로 건조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에 배의 성능을 바다 위에서 최종 검증하는 해상시운전 작업은 통상적으로 3주 정도가 소요된다.
군함·잠수함 등 특수선은 시운전에 6개월~1년이 소요되며 일단 한 번 바다에 나가면 근로자 교체가 어렵다. 이러한 와중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면 선상 체류시간 전체를 근무시간으로 적용해야 하는 탓에 인건비 부담이 폭증한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근로시간 규제는 지나치게 경직적이고 규격적인 근로 모형만을 쫓고 있다"며 "근로시간 규제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 규제는 노사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조선업의 특성을 고려해 핀셋형으로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특별연장근로 활용성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의 연착륙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