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률 첫 역성장…코로나發 경기 위축 심화
부동산·증시는 역대급 인플레…제로금리 장기화 속 양극화 우려
우리나라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졌다. 문제는 이로 인해 실물경기는 완전히 얼어붙었음에도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는 돈이 몰리면서 역대급 자산 인플레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와중 기준금리 동결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실물경기와 자산 시장 사이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당분간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에 따른 양극화 우려는 점점 더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유래 없는 초저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결국 -1.1%에 그쳤다. 마이너스 성장률은 과거 특별한 위기 때가 아니면 경험해보지 못한 성적이다. 그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대 내지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경험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과 외환위기 국면이었던 1998년(-5.5%),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80년(-1.7%)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수 경기도 꽁꽁 얼어붙었다. 한은은 지난해 국내 민간소비 성장률도 -4.3%에 그치며 전체 경제성장률을 대폭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지난해 11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5%에 그치며, 전년(0.4%)에 이어 0%대 저물가에 머물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결론만 놓고 보면 한은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으로 꺼내 든 제로금리 카드는 결국 약발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한은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같은 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기고 있는 실물경제와 달리, 자산 시장은 이례적 호황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기준금리가 급락한 이후 빠르게 확대된 시중 통화량이 민간 소비나 기업의 유동성을 개선시키기 보다는 부동산과 증시에만 쏠리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증시의 흐름은 자산 거품 논란을 한층 가속화시키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본격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지난해 3월 당시 1400대까지 고꾸라졌지만, 연말에는 3000선에 육박하는 활황으로 장을 마감했다. 그리고 올해 장이 열리자마자 사상 첫 3000고지에 올라서며 상승세가 더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하는 한은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탓에 주름살만 늘어나는 형국이다. 제로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 국면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금리를 더 내리기엔 부담이 커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금리 인하 시 가뜩이나 과잉돼 있는 시장 유동성을 추가로 확대시키며 자산 버블 부작용을 키울 수 있어서다.
이미 국내 통화량은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원계열·평잔 기준 광의 통화량(M2)은 3183조5009억원으로 지난해 말(2912조4341억원)보다 9.3%(271조668억원)나 증가했다. M2는 현금을 비롯해 요구불예금과 머니마켓펀드,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과 금융채 등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 금융상품들을 포함한 것으로,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리 동결 모드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은은 이번 달 열린 새해 첫 정례회의에서도 기존 연 0.50%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다섯 번째 동결 결정이다. 이에 대해 글로벌 거시경제지표 분석기관 트레이딩이코노믹스는 한은이 올해 말까지 현재 수준의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려스러운 대목은 이렇게 장기화하는 저금리로 인해 실물과 자산 간 극단적인 디커플링이 심화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0%대 기준금리 시대가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유동성이 공급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의 당사자인 한은 역시 같은 걱정을 내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번 달 초 범금융권 신년사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후유증으로 남겨진 부채 문제와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쏠림 등 해결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며 "특히 부채 수준이 높고 금융과 실물 간 괴리가 확대된 상태에서는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만큼 금융 시스템의 취약 부문을 다시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관찰되고 있는 이런 변화가 우리 경제의 양극화를 보다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근로소득이 자산 증식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가속화하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구조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대응 방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