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차 포드 익스페디션-쉐보레 서버번, 차박·캠핑 수요 정조준
고급차 링컨 네비게이터-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리무진 수요 대응
현대차 팰리세이드, 쌍용차 G4렉스턴, 쉐보레 트래버스와 같은 대형 SUV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풀사이즈 SUV’들이 국내 시장에 속속 상륙하고 있다.
풀사이즈 SUV는 미국과 같은 ‘땅 걱정 없는’ 지역에서나 쓸모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국내에서도 SUV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소비 욕구도 다양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리는 분위기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시장에 최대 4종의 풀사이즈 SUV들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사전계약에 돌입한 포드 익스페디션을 비롯, 포드의 럭셔리 브랜드 링컨 엠블럼을 단 네비게이터는 국내 출시가 확정됐고, 한국GM도 쉐보레 타호의 국내 수입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재 판매 중인 GM의 럭셔리 브랜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도 조만간 풀체인지 모델로 출시된다.
풀사이즈 SUV는 폭이 2m가 넘고 길이는 5m대 중반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차다. 폭만 놓고 보면 마을버스로 사용되는 미니버스에 필적한다.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차급으로, 올해 국내 출시 예정인 풀사이즈 SUV의 브랜드가 모두 미국 업체인 포드와 GM 계열인 것도 그 때문이다.
국내에서 ‘대형’으로 불리는 팰리세이드와 트래버스는 미국에서는 ‘미드사이즈(중형)’로 분류된다. 그만큼 스케일이 큰 시장이다. 풀사이즈 SUV를 굳이 국내 차급 분류 기준으로 정의하자면 ‘초대형’ 정도가 되겠다.
사실 풀사이즈 SUV가 국내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2세대 모델이었고, 지금은 4세대 모델이 팔린다.
현재 국내 판매되는 4세대 에스컬레이드는 숏바디인 ESC 모델임에도 전장이 5180mm, 전폭은 2045mm에 달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시된, 그리고 올해 국내 출시 예정인 5세대 에스컬레이드는 덩치를 더욱 키웠다. 숏바디(ESC)만 해도 5382mm의 전장에 2059mm의 전폭을 갖췄고, 롱바디(ESV)는 전폭은 동일하지만 전장이 5766mm에 달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일반 주차공간에서는 수용이 불가능한 사이즈다. 다만 가격이 1억2000만~1억40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차량이라 개인 차고를 보유한 상류층이나 보유할 수 있는 차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포드에서 익스페디션을 들여오며 상황이 달라졌다. 익스페디션은 풀사이즈 SUV긴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대중차 브랜드에서 제작한 차인지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포드 코리아가 발표한 사전계약 가격은 8240만원이다.
물론 이 역시 가격 부담이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억’소리 나는 에스컬레이드보다는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에스컬레이드보다 더 큰 5334mm의 전장에 2123mm의 전폭을 갖춘 익스페디션은 ‘실용적’ 측면에서 넓은 실내공간의 강점을 제공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포드코리아 역시 차박과 캠핑의 ‘필요조건’을 가까스로 갖춘 차들과 차별화되는 ‘충분조건’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어찌어찌 하면 차박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누워서 뒹굴 수 있는 광활한 차박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익스페디션의 경쟁차인 쉐보레 타호(숏바디), 서버번(롱바디) 형제도 한국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타호-서버번 시리즈는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차종이다. 주로 액션 신에 많이 등장하며 옆에서 들이받아도 꿈쩍 없이 달리고 총알구멍 정도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터프한 이미지의 차다. 주로 정부 요원들의 관용차로 등장해 ‘FBI차’로 불리기도 한다. 이 차를 들여온다면 PPL(간접광고)은 자동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타호-서버번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대중차 버전이기도 하다. 한국GM은 캐딜락을 숏바디 모델인 ESC만 들여왔던 것처럼 쉐보레 브랜드에서도 차체 크기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타호를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차 브랜드 차종인 만큼 타호도 풀사이즈 SUV로서는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완성차 업체인 한국GM을 통해 판매되는 점을 감안하면 포드 익스페디션보다도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 국산차만큼 편리한 AS는 덤이다.
GM-포드 내 럭셔리 브랜드간 풀사이즈 SUV 경쟁도 재점화한다. 포드의 럭셔리 브랜드 링컨은 대형 SUV 에비에이터의 상위 모델인 네비게이터를 출시할 예정이며, GM의 럭셔리 브랜드 캐딜락 역시 기본 판매 모델보다 진일보된 5세대 에스컬레이드로 맞불을 놓는다.
에스컬레이드와 네비게이터는 차박·레저와 같은 실용적 측면보다는(굳이 그 용도로 쓰겠다면 쓸 수도 있겠지만) 넓은 공간을 가진 럭셔리한 이동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어필하는 차다.
정숙성과 편안한 승차감에 초점을 맞춘 튜닝과 다양한 고급 편의사양, 넓은 개인별 좌석배치 등을 통해 항공기의 퍼스트클래스에 필적하는 안락함을 제공해주는 차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차종이 국내에 모두 상륙하면 미국의 양대 자동차 업체 GM과 포드의 럭셔리-대중차 라인업 4종이 모두 한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된다.
이처럼 한 해에 몰린 풀사이즈 SUV 러시는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력 상승과 다양해진 소비 욕구를 반영한다. 특히 SUV가 장기간 인기를 누리면서 그동안 대형 SUV나 대형 세단을 타던 소비자들의 차급 상향 욕구를 충족시켜줄 차종이 필요해진 것도 풀사이즈 SUV 등장을 위한 배경을 제공해줬다.
다만 자동차 업체들이 과거 국내 시장에 풀사이즈 SUV를 들여오길 망설였던 원인이 됐던 교통 인프라는 여전하다는 게 걸림돌이다.
특히 아파트나 공공장소 주차장의 크기에 한계가 있어 풀사이즈 SUV를 주차하려면 주차공간 두 곳을 점유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드가 그동안 ‘개인 차고를 보유한 자의 차’로 불렸던 것도 그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주요 주차장들은 팰리세이드나 트래버스 같은 대형 SUV를 세우기도 불편한 곳이 많은데 풀사이즈 SUV들이 보편화되면 그런 문제들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