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공연장 관계자들이 직접 시상자 발표
흑인 인권 운동 주제곡, '올해의 노래'로 선정
“변화에 뒤처져 있다” “보수적인 시상식이다”
그래미 어워드에 대한 인식이고, 실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한 번에 모든 걸 바꾸긴 힘들지만 이번 2021 그래미 어워드에선 분명 ‘변화’가 감지됐다. 무엇보다 그래미는 백인 우월주의라는 비판을 수용한 듯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고, 코로나19 펜데믹 속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음악 팬들을 위로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들이 시상자를 발표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작은 클럽과 카페, 소규모 공연장의 사장과 바텐더 등이었다. 배철수는 “국내에서는 소규모 공연장,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법이다. 이제 국내에서도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는 인디밴드 문화를 합법적으로 가져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팬데믹 상황에서 제일 힘든 게 공연업계”라고 말했고, 임진모도 “잘 나가는 사람들이야 언택트 시대를 견딜 수 있지만 사실 신인들이나 인디 가수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도 마찬가지고 공연업계가 참 어렵다”고 덧붙였다.
국내 대중음악 공연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공연을 올리지 못했고, 다른 장르와는 차별된 세부지침으로 도산 위기에 처했다. 여러 차례 현실성 있는 정책, 세분화되고 장르 특성에 맞는 지침을 요구해왔지만 최근엔 라이브 클럽 공연이 강제 중단되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라이브클럽을 기반으로 한 국내 인디문화가 이미 20년 이상 이어져 왔음에도 여전히 라이브클럽 특성에 맞는 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는 일반음식점에 설치된 무대시설에서 공연을 할 수 없다. 방역지침상 단속 근거는 있지만, 음식점이 아닌 공연장 성격으로 사실상 운영 중인 라이브클럽들에는 과도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홍대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 라이브클럽 상당수는 음료·주류를 함께 판매하는 등의 현실적 이유로 정식 공연장이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 영업해 왔다.
국내에서 소규모 공연장에 대한 인식 변화, 제도 변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3대 시상식 중 하나인 그래래미의 이 같은 움직임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배철수는 “음악을 하는 후배들 보면 진짜 힘들다. 정책 당국에서 이 방송을 볼지 모르겠지만 본다면 소상공인, 어려운 사람들 돕는 것도 좋지만 공연계에도 시선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또 그래미는 인종차별 금지에 대한 목소리도 담았다. 그간 그래미는 전통적으로 백인이 주류가 아닌 음악에 인색했다. 백인이 아닌 음악가는 R&B 또는 랩 등 다른 장르 카테고리로 치부돼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자랑하는 뮤지션을 외면하는 인상이 짙지만, 조금씩 이런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대상 부문 중 하나인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는 흑인 인권 운동(Black Lives Matter)의 주제곡으로 많이 쓰였던 H.E.R.의 ‘I Can't Breathe’가 차지했다. 지난해 여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루이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인종차별 속 흑인의 고통을 가사로 전한 바 있다. H.E.R.는 수상 후 무대에 올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하다. 믿을 수 없이 놀랍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레코드 오브 더 이어’는 빌리 아일리시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