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흑백보다 더 진한 두 남자의 우정…이준익 감독의 새 명작 탄생

설경구 첫 사극 도전

변요한 "진실되게 연기하려 노력한 작품"

이준익 감독 "흑백 영화지만 많은 색채가 담겼다"

ⓒ

이준익 감독이 신작 '자산어보'를 통해 사상과 신분을 뛰어넘은 두 남자의 우정을 그렸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는 영화 '자산어보'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준익 감독,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이 참석했다.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역사 속 정약전을 조명한 이준익 감독은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어 시나리오를 쓸 때나 촬영할 때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소재였다"면서 "조선에 서학이 들어오게 된 사건에서 튕겨나온 인물의 사연이다. 정약전, 정약용은 기록이 있어 표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창대는 기록 속에 언급만 있을 뿐이다. 창대의 이야기와 배경은 허구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증과 허구가 적절히 짜여진 이야기다. 학자 입증에서 고증을 중시한다면 사실을 통해 진실에 도전하겠지만, 창작자는 사실이나 기록을 근거로 허구를 통해 진실에 도전한다. 모든 영화가 진실에 도착하지 않는다"면서 "날조를 했느냐, 합당한 근거를 가져왔느냐 차이 때문에 먼훗날 영화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자산어보'는 10년뒤 쯤 자기 자리를 찾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자산어보'는 대부분 흑백으로 진행된다. 이 감독은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고집 부렸다"면서 "'동주'는 일제강점기 시절 스물 여덞살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청년의 이야기로 밟게 찍을 수 없었다. 그 땐 인물들이 활짝 웃는 장면들이 없다. '자선어보'는 흑보다 백이 더 많이 차지한다. 모든 개인은 시대와의 불안을 겪고 있다. 그걸 이겨내는 방식이 훨씬 더 밝다. 삶은 그래도 재미있고 아름답게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동주'와 비교했다.

정약전을 연기한 설경구는 "실제 인물을 배역의 이름으로 쓴다는 건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약전에 대해 공부했다기보단 섬에 들어가서 배우, 스태프들과 잘 놀자란 마음이었다. 사극이 처음이지만 잘 어울린다는 감독님의 말을 듣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고 첫 사극에 도전한 소감을 말했다.

변요한은 어부 청년 창대를 연기했다. 창대는 배움에 갈증을 느끼면서 유배를 온 정약전과 가까워지는 인물이다. 변요한은 "영화를 방금 보고 와서 정신이 없다. 서툴지만 진실로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제가 연기하고 눈물을 흘려버렸다"면서 웃었다.

이어 "제가 연기를 잘해서 흘린게 아닌, 영화가 좋아서 눈물이 났다. 예전에는 참았는데 지금은 마음가는대로 울고 싶었다"고 영화를 본 감상을 말했다.

이정은은 흑산도에서 정약전의 곁을 지키는 가거댁으로 등장한다. 이정은은 "섬주민을 대표해 도시와는 다른 정서를 전달하려고 했다. 또 약전과 창대의 유대관계를 맺게해주는 중간자 입장이라 촬영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잘 보일 수 있도록 신경썼다"고 연기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설경구와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정은은 "너무 친하다보니 연인 연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친하니까 무엇이든 해보게 되더라"라며 "스스럼없으니까 여러가지를 시도할 수 있어 좋았고, 생각보다 좋은 장면을 얻은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자산어보'에는 류승룡부터 조우진, 김의성, 김기영 등 많은 배우들이 우정 출연해 영화를 빛냈다. 이준익 감독은 "설경구가 이런 영화에는 잠깐 나오는 역할이라도 친숙한 배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소재가 상업적이지 않고 '자산어보'도 잘 모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며 "선택에서 배우의 수준을 봤다. 자기가 돋보이지 않은 역할임에도 불구 이런 선택을 한 배우들이 존경스럽다"고 감사를 표했다.

서로가 서로에세 스승이 되어준 약전과 창대처럼 설경구와 변요한도 영화를 찍으며 더 끈끈해졌다고. 설경구는 "'자산어보'는 제게 벗이 되는 영화다. 실제로 섬 안에서 똘똘 뭉쳤다. 휴차 때도 변요한과 이정은 씨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잘 놀았다"고 떠올렸다.

이에 변요한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선배다. 더 사랑하게 됐다. 빈말 잘 못하는데 여러가지 배우고 느낀 순간들이었다. 선배님은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지 않으려 해도 후배 입장에서는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설명하면 밤을 샐 것 같다"고 설경구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이준익 감독은 "커다란 사건이나 정치, 전쟁사로 그 시대를 규정짓는 다는 것 자체가 오류다. 그럼에도 찾아내야했고, 개인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 시대의 불안을 겪었던 사람들을 찾아내다 보면 집단이 가지고 있는 집대성의 씨앗이 보인다. 정약전은 정약용과 다른 가치관을 추구했다. 대립이 아닌 차이를 이야기 하는 영화"라며 "그 차이 속에서 창대란 인물이 어떻게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가를 보여준다. 200년 전이라지만 현대사회의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자산어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했다.

설경구는 개봉을 앞두고 "얼마 전 코엑스에 왔다가 사람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힘든 시국이지만 '자산어보'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위로해주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시원한 자연도 보시고 좋은 시간되길 바란다"고 예비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3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