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란·반란죄라도 범했나
문 정권의 코미디 같은 代母 구하기
후보단일화로 승세 굳히는 야권
문재인 정권을 상징하는 용어로 ‘적폐청산’ ‘촛불혁명’보다 더 적절한 게 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는 과거 지향적인 캐치프레이즈다. 문 정권은 집권하기 무섭게 구정권 숙청의 칼을 빼 들었다. 탄핵으로 파면 당한 대통령에 더해 그 전 대통령까지 싸잡아 감옥으로 보냈다. ‘전직 대통령 감옥 보내기’는 이미 전례가 있었던 만큼 주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반란·내란 수괴의 죄목으로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의 최종 형량은 징역 22년과 17년이다. 내란 및 반란죄에 버금가는 형량이다. 수감 기간(박 전 대통령은 오는 31일로 구속 만 4년을 맞는다)으로 따진다면 후 2인이 전 2인보다 훨씬 중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그들이 내란·반란죄라도 범했나
이 같은 엄청난 형량과 장기간의 수감은 ‘촛불혁명’ 이름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 정권이 혁명에서 비롯된 것이려면 전직 대통령은 희대의 국가적 악한(惡漢)이어야 한다. 대통령직 파면 정도로는 ‘혁명’이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22년의 징역형을 보탠 것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가 여생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었다는 혁명정권의 선고처럼 들린다.
두 전직 대통령 외에도 그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들, 측근으로 불렸던 사람들이 굴비 두름 엮이듯 오라를 차고 법정으로 교도소로 보내졌다. 혁명정부의 적폐청산 작업 일환이었다. 겹겹이 쌓인 폐단을 청산하겠다면서 사람을 처벌하는 일부터 시작했고, 거기에 집착했다. 과거 청산이 아니라 과거와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구시대, 전 정권에 대한 단죄가 곧 ‘혁명’이었다. 집권세력은 그렇게 인식했다.
수레가 말을 이끄는 구조의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운 신 경제정책, 비둘기를 안고 총구 앞에 서는 평화지상의 신 안보정책, 탈미(脫美)·반일(反日)·존중(尊中:중국 높이기)의 신 외교정책에도 미래는 안 보인다. 이 역시 과거와의 전쟁이다.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과거에서 벗어나겠다면서 오히려 그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모습을 4년 내내 보여 왔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지만 문 정권도 ‘개혁’을 표방했다. 잘못된 제도·관행·인식·행태를 극복하고 바로 잡는 게 ‘개혁’이다. 개혁 중에서도 문 정권이 명운을 걸다시피 한 게 ‘검찰개혁’이었다. 강단과 강직을 높이 사 정권 출범 직후 서울지검장으로 발탁했던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기용했다. 그 기백과 리더십으로 검찰개혁을 이끌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윤 전 총장도 그것이 미래지향적인 검찰 발전 과제인 것으로 인식했을 법하다. 그런데 정권의 의도와 주문은 역시 ‘뒤로 진격!’이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당시)와 그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검찰개혁’의 퇴행성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정권 실세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호와 검찰의 무력화가 개혁의 실상이었다. 윤 총장(당시)은 이 두 가지를 다 거부했고, 이 때문에 문 정권의 긴 내전(內戰)이 벌어졌다.
문 정권의 코미디 같은 代母 구하기
조 장관 후임으로 등장한 추미애 장관은 정권의 손아귀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윤 총장을 위협하고 조롱하고 모욕 주는 방식의 길들이기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 그게 먹혀들지 않으니까 수사지휘권이라는 칼을 휘둘러 댔다. 그러다 제풀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어서 박범계 장관이 들어섰다.
그 역시 마리오네트(팔·다리·머리에 줄을 매달아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한 느낌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사법적 신원(伸冤)을 위해 ‘추 전 장관의 취미’로 여겨졌던 수사지휘권을 덩달아 휘둘렀다. 운동권의 대모(代母)로, 그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한 전 총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무리를 하고, 어떤 희극을 연출하든 상관없다는 판단을 박 장관 혼자서 했을 리는 없다. 마리오네트의 줄을 누가 쥐고 있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조국을 구하느라, 윤석열을 몰아내느라, 한명숙을 신원하느라 문 정부는 1년 반 이상을 뒤로만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국민적 조소와 불신의 늪에 빠졌다. 박 장관만의 망신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로써 문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속화 과정에 들어섰다. 법으로 재미를 봐왔지만 그 법이 언제까지나 문 정부의 손안에서만 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코미디 한 판이었다.
요즘 국민들의 마음을 있는 대로 다 찢어놓고 있는 ‘LH 부동산 투기 의혹’, 이에 대한 정권 측의 대응 또한 과거와 맞장 뜨기다. 그 구시대적인 행태가 현 정권 하에서 버젓이 저질러졌다는 것을 시인하고 사과하면 될 일을 과거 정권 탓으로 돌리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부동산 대책이라며 수십 번을 내놨지만 귀에 남은 말은 전 정권 탓하기, 피부에 닿는 것은 집값과 세금 폭등뿐이다.
후보단일화로 승세 굳히는 야권
어릴 적에 많이 들었던 도깨비 이야기가 생각난다. 힘 좋기로 소문난 김 서방(이 서방, 박 서방이라도 상관없다)이 밤에 거나하게 취해서 집으로 가는데 동네 어귀 서낭나무 아래서 누가 씨름 내기를 걸어왔다. 밤새도록 서로 붙잡고 씨름을 하다가 날이 밝아서 보니 손에 싸리 빗자루 하나가 들려 있더란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집권 더불어민주당 측의 전략은 과거 때리기다. 잘못은 모두 과거 정권 탓이고 자기들은 그걸 바로잡는 정의의 투사쯤으로 자처하고 있다. 지난 4년 간 적폐청산을 어떻게 했기에 아직도 과거 탓만 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은 없다. 이 당의 이해찬 전 대표는 다시 ‘20년 집권론’을 꺼냈다. 요지는 간단하다. 절대로 빠지지 않을 만큼 길고 큰 대못을 박으려면 그 정도의 집권기가 필요하다는 것이겠다. 도깨비와 씨름하는 세월이 그렇게 길어지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야권 쪽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작업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 22~23일 여론조사를 거쳐 늦어도 24일엔 단일후보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그리고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한 용단이라고 할만하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유권자의 호응이 큰 것을 보면(여론조사에서) 과거와의 전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실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의 향방을 결정하는 게 이번 서울시장(물론 부산시장도) 보궐선거라면 야권은 이제 정권 쟁취를 기약할 수 있는 고지에 올라섰다고 하겠다. 다만 승리에는 조건이 있다. 자유우파 정치세력의 대동단결이 필수 불가결의 조건이고 과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