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기술 탈취 보상해야" SK "사업 접으란 소리" 이견차 지속
소송 불확실성 해소해 미래 배터리 산업 공동 대비해야 '목소리'
폭스바겐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은 자동차산업의 전방위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테슬라가 자체 배터리 생산에 뛰어들었고 도요타가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적극적이다. 다른 글로벌 완성차들에게도 연쇄 도미노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배터리 업계를 대표하는 K배터리 역시 끊임없는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 개발 및 투자로 보다 확고한 지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적으로 시간·비용 소모가 큰 법적 다툼을 매듭짓고, 공동 연구개발(R&D) 등으로 미래 배터리 산업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폭스바겐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은 자동차 산업에 자체 배터리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서 전기차 1위 업체인 테슬라는 작년 독일 배터리업체 ATW오토모티브를 인수하며 배터리 수직계열화 작업에 나선 바 있다.
글로벌 완성차들의 잇따른 배터리 내재화 선언은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통상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 원가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파워데이'를 통해 2030년까지 전기차에 통합 셀을 장착함으로써 배터리 비용이 50%까지 절감될 것으로 기대했다.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시장으로 빠르게 변화되는 상황에서 선진화된 배터리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퍼스트 무버(선발 주자)'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완성차나 배터리 업체들이 앞다퉈 매년 연구개발에 수 백 억원을 쏟아 붓고 조 단위 시설 투자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 정부까지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배터리 국산화 작업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이 장밋빛 미래만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한국·중국·일본 배터리 제조업체들의 글로벌 위상은 과거 오랜 기간 동안의 기술 개발과 선제적인 투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은 경험도 적지 않다. 완성차업체들이 이 기술·비용 우위를 따라잡지 못하면 오히려 막대한 투자 손실만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셀을 구현하는 온도가 상온(15~25℃) 보다 높아 이 온도 차이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상업생산에 성공하더라도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이 더 낮으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완성차업체들이 아무리 자본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호기롭게 도전하기 어려운 이유다.
배터리 산업이 새 국면을 맞이한 상황에서 K배터리가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 초격차 위상을 공고히 다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LG·삼성·SK 등 배터리 3사는 리튬이온 배터리 뿐 아니라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위한 연구 개발을 진행중이며 이르면 2027년부터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경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햇수로만 3년째 법적 다툼을 벌이는 등 서로를 물고 뜯기 바빠 시장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2019년 4월 시작된 배터리 소송은 지난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로부터 최종 판결을 받았음에도 양사 모두 합의에 적극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합의금이다.
업계 의견 등을 종합하면 LG측이 원하는 배상액은 3조원 이상인 반면 SK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1조원 안팎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ITC는 2월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하며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다만 미국 고객사들의 피해를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5일 컨퍼런스콜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제시하는 합의금 수준은 조 단위 차이가 난다"면서 "총액에 어느 정도 근접해야만 각론을 논의할 수 있을 것"고 밝혔다. SK가 LG의 기술을 탈취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합의금액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SK는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다는 것인지에 대해 ITC가 판단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수 조원 규모의 합의금을 내라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양사의 배터리 분쟁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한국·미국 정치권까지 가세해 '대승적 합의'를 요청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번 판결로 피해를 입게 된 조지아주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했다.
정세균 총리도 "가능하면 신속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개인 의견을 피력했었다"며 "당시에는 미국 정치인들이(로부터) 한국에 연락 왔었는데 지금은 양사가 백악관을 상대로 주장을 펼치고 있어 (이런 사태는)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ITC 최종 판결 이후에도 양사가 합의에 좀 처럼 속도를 내지 않자 재차 일침을 가한 것이다.
양사의 끊임없는 분쟁과 반목으로 부작용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 LG와 SK 각 사에 악재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배터리 기술 중심축이 한국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수주잔고 150조원 이상을 확보하고 있고, 이를 소화하기 위해 연간 3조원 이상의 대규모 시설 투자가 진행중이다.
앞으로도 '초격차' 전략으로 글로벌 배터리 기업 1등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적기 투자가 필수적인 만큼 시장으로부터 적정한 사업가치를 평가 받아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현대차 코나 전기차(EV) 화재로 인한 충당금 설정으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던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폭스바겐 이슈까지 겹치면서 당초 기대했던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렇듯 대내외 이슈가 산적한 상황에서 '소송전'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ITC 판결로 미국 사업에 제동이 걸린 만큼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양사가 합의를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할 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중국·일본 배터리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폭스바겐이 LG-SK 소송이 불거질 당시 ITC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내재화 계획을 앞당긴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폭스바겐처럼 K배터리의 법적 분쟁에 부담을 느낀 완성차들이 다른 제조사들과 협업을 추진하거나 안정적인 물량 조달을 위해 K배터리 물량을 차차 축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LG-SK 소송' 해결이 K배터리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합의 과정에서 진통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대규모 투자 등 시장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다 양국 정치권에서도 판결 영향을 주목하는 만큼 끝내 합의를 도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ITC 판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여부가 3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LG와 SK가 극적 합의로 경영 정상화를 시도할 지 주목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배터리 산업은 1차적으로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인 뒤 2차적으로 원가 경쟁을 치열하게 벌일 것"이라며 "K배터리가 퍼스트 무버로 안착할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로 남게 될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선 먼저 LG와 SK가 배터리 분쟁을 원만하게 합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후 정부 등의 지원에 힘입어 공동 R&D 등을 추진해 기술 표준 선점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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