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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광우의 싫존주의] 금소법과 졸속행정의 기억


입력 2021.04.05 07:00 수정 2021.04.05 05:04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주먹구구식 행정에 무용지물 전락한 두낫콜 사례

불완전판매 해법은 새 아이디어 아닌 '운영의 묘'

은성수(왼쪽) 금융위원장이 3월 26일 서울 종로구 KB국민은행 광화문종합금융센터를 방문해 은행직원에게 금융소비자보호법 관련 현황을 듣고 있다.ⓒ뉴시스

보험업계가 어쩔 수 없이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자식으로부터 들려온 소식에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20억원이 넘는 돈을 모아 탄생시켰던 두낫콜 서비스가 은행연합회로 넘어간 후 몇 년 만에 무용지물로 전락해 버렸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다. 무소식이 희소식인줄 알았건만 현실은 반대였던 셈이다.


두낫콜은 2012년 보험개발원 주도로 닻을 올렸던 소비자보호 서비스다. 자동차보험 갱신 시기만 되면 끊이지 않는 가입 권유 전화로 고객들의 불만과 민원이 거세지자,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손쉽게 취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들어간 돈은 총 23억2000억원으로, 자동차보험을 다루는 손해보험사들이 분담금을 조성해 지원했다.


베일을 벗은 두낫콜에는 호평이 쏟아졌다. 소비자들의 불편을 간편히 해결함과 동시에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대책으로도 충분히 기능을 다하면서다. 이듬해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두낫콜 서비스를 카피해 갈 정도였다.


하지만 불운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4년 초 신용카드사들의 개인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금융위원회는 대응안으로 두낫콜을 점찍었다. 2차 피해를 막겠다며 금융권 전반에 두낫콜 서비스를 확대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금융위는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두낫콜을 은행연합회로 이관하라고 종용했다. 보험개발원은 결국 모든 데이터를 넘기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서비스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주인이 바뀐 두낫콜은 표류했다. 금융위는 지난 6년여 간 은행연합회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두낫콜이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시 두낫콜을 활성화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손해를 감수하고 두낫콜을 넘겨줬던 보험업계에서는 시스템이 그렇게 방치된 줄 몰랐다는 울분의 목소리가 나온다.


두낫콜은 졸속행정에 따른 부작용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 새로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을 알리는데 여념이 없는 금융당국의 모습은 어딘가 씁쓸함을 곱씹게 만든다.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를 엄벌하겠다며 금융사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금융권은 기시감만 느껴진다는 반응이다.


대형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당국은 새로운 간판을 내건 소비자보호 정책을 내놓는다. 문제는 매번 이름만 거창할 뿐 알맹이엔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대안이 부실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해답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모두 제시돼 있다는 뜻이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깨달음의 길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닌, 스스로 알고 있는 일의 실천에 있다는 의미다. 반복되는 금융권의 불완전판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도 쇄신 보다는 운영의 묘가 절실하다. 새 법이 가동됐지만 과거의 행정 미숙이 반복된다면, 금소법 역시 시나브로 두낫콜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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