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LTV 완화 적용 움직임에 은행 혼란
가계대출 대책 발표 임박…규제 급선회 '촉각'
정부와 여당의 갑작스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완화 움직임에 은행들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이 집값 폭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에 최근 몇 년간 고(高)LTV 대출을 줄이고자 총력을 기울여 왔는데, 돌연 정책 방향이 180도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새로운 가계대출 대책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은행들은 혹시 모를 규제 급선회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이달 안에 가계대출 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멈출 줄 모르고 불어나고 있는 가계대출을 안정화하기 위한 대안이 핵심 골자다.
금융위는 당초 이번 달 초 해당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당과의 협의가 지연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가계대출 전반에 대한 규제 강화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금융위는 이런 의견을 고려해 청년층과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일부 규제 예외를 확대하는 맞춤형 핀셋 금융지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4·7 재보궐 선거 전후로 여당에서 규제 예외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면서 금융위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른바 핀셋 대책의 핵심은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LTV 완화다. 현재 투기·투기과열지구는 주택가격의 40%, 조정대상지역은 50%의 LTV가 적용되고 있다. 무주택세대주에게는 각 10%p씩의 우대 LTV가 제공된다. 그런데 여당이 우대 폭을 더 확대하는 압박에 나선 것이다.
차기 집권당 대표에 도전하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으로 논란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4·7 재보선의 패배 원인으로 지목된 현 정부의 규제 중심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LTV를 더욱 공격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다.
송 의원은 지난 1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초로 자기 집을 갖는 분양 무주택자에게 LTV를 90%까지 확 풀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집을 갖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LTV를 제한해 버리면 집을 살 수 없게 되고, 은행에 의존하지 않는 현금 가진 사람들이 이를 다 가져가게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수년간 은행들에게 LTV가 높은 대출을 자제하라고 주문해 왔다는 점이다. 여당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가면 지금까지의 대출 규제 방향이 한 번에 틀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원회는 2018년 LTV가 60%를 넘는 고LTV 대출로 분류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은행의 자본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LTV 60% 초과 대출의 위험 가중치를 최대 2배까지 높였다. LTV가 높아 잠재된 위험이 큰 대출인 만큼, 자본을 더 쌓으라는 취지에서다. 실질적으로는 주택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을 줄임으로써, 치솟는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힘을 싣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은행의 고LTV 대출은 상당히 줄었다. 국내 은행들 중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LTV가 60% 이상인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조1242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36.9% 급감했다. 대신 LTV 60% 미만의 주택담보대출은 76저3024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22.7%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규제로 부동산 대책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꾸준한 시그널을 줌으로써 정책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이제 와서 LTV를 풀어주게 되면 은행과 차주의 혼란이 커지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